추석 연휴를 맞아, 서로 일상에 쫓기며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동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술이 한 두 잔씩 오가며, 학창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서로 앞다투어 하나 둘 씩 풀어놓다 보니, 어느덧 모두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선술집 밖 창으로 비치는 보름달보다 크고 밝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되었다. 그렇게 한창을 웃고 떠들다가 친구 하나가 툭 내뱉은 한마디가 머리를 울렸다. ‘야 베짱이가 개미 인척 하느라 참 수고 많다’ 였다. 그렇다. 평범한 것이나, 일상적인 것에 별 관심을 안보이고, 학업도 뒷전에 두면서 늘상 그림이나 끄적대고 유치한 글 솜씨로 소설 비슷한 것을 쓰고 있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분명 지금 모습은 그때와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베짱이 같은 예술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건만 말이다.
사실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보고 싶은 내 열망은 아직 죽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직장을 다닌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일개미 중의 하나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어딘가 적응이 안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내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들의 캐릭터들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이를 글로 엮어서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유명 포털에 웹 소설을 업로드해서 작가로서 첫 걸음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실하게 개미처럼 꾸준히 살면 그야말로 동화처럼 다 행복해지는 줄 알고 꿈을 접고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베짱이가 되거나, 개미가 되거나 꿈과 행복을 직접 쟁취하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것은(혹은 행복 인척 하며 살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1년 달력을 보니, 벌써 1년 중 3개월만 남은 시점이 되었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연초에는 꼭 짧은 단편 소설을 하나 써보고 말겠다는 생각에 시놉시스도 정리하고 책에 쓸만한 자료도 읽으면서 조금씩 준비를 했었는데, 어느덧 회사 일이 바빠지고 개인적으로도 도저히 시간을 내기 힘들만큼 이런저런 대소사들에 쫓기다 보니 아무것도 진척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 버렸다.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 문구가 머리 속을 떠다닌다.
이렇게 무언가를 포기해가며 헌신해가면서 성실하게 사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고 책임이 늘어가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올해는 기필코 소설가로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 할 것이라 다짐했는데 말이다. 뜨는 해를 보며 다졌던 의지를 무심히 잊고 살다, 이제 둥근 달 아래서 다시 생각이 난 것이다. 어쩌면 내 자신도 잊고 있었던 마음을, 이제서라도 친구들 덕분에 기억이 난 것이 다행이라 해야 할까. 올해가 가기 전에 어서 빨리 글쟁이로서의 삶에 도전해야 할거 같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로.
이제 시작하려는, 혹은 지속하고 있는 우리네 예술가들을 위한 페스티벌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