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시대의 예술을 떠올리는 이유
나폴레옹 시대의 회화를 본다는 것은 정치적 급변기의 시각예술의 전개를 확인하는 것이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미술사조를 보통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다비드의 그림에서 잘 드러나듯 고대의 로마를 기억하는 그림들이 지배적인 흐름을 이루고 있어서다. 분명한 윤곽선과 견고한 구성, 그리고 정치적 주제를 표현한 그림들이 사랑받았다. 그런데 하나 기억해야할 사실은 신고전주의 바로 직전의 양식이 로코코라는 점이다. ‘혁명전야’의 18세기를 지배한 양식이다. 프라고나르, 부셰의 그림에서 보듯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강조됐다. 로코코의 그림들은 풍성하고 화려했지만 이미 부패와 타락의 냄새도 풍기고 있었다. 이와 비교하면 신고전주의 그림들은 단순하고 간결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그 꿈을 실현하고픈 힘이 보였다. 로코코가 현실의 행복을 노래했다면, 신고전주의는 미래의 목표를 바라봤다.
신고전주의는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을 만나 도덕적 우위도 점한다. 로코코는 ‘귀족’들의 취향에 봉사하는 과거의 ‘악’이라면, 신고전주의는 ‘시민’들의 태도까지 고양시키는 미래의 ‘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신고전주의도 나폴레옹의 퇴장과 맞물려 시대의 뒤로 물러난다. 계몽의 차가운 ‘이성’, 이것에 의문을 품은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시대의 회화, 곧 신고전주의는 혁명과 함께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나폴레옹의 퇴장과 더불어 힘을 잃고 사라져버렸다.
아람문화아카데미 여름특강에 개설된 ‘나폴레옹 시대의 회화와 영화’는 ‘혁명의 시기’를 맞은 예술사조의 운명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혁명 시기의 사조인 신고전주의를 중심에 놓고, 그와 관련된 로코코와 낭만주의를 비교한다. 그런 미술형식을 십분 이용한 영화들을 보며, 혁명 시기의 세상, 그리고 그 시대의 예술의 운명을 생각해볼 것이다. 왜냐하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 혁명에 버금가는 사회적 급변의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다.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통한 양방향 소통시대, 문자보다는 영상물과 이모티콘 같은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 이와 함께 전개되는 ‘대중의 약진과 의미 변화’는 감히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 폭이 크다. 이번 강의에서 현재의 변화와 비교되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유이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