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협력하는 색다른 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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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지역연계 레퍼토리 개발사업 리뷰

고양문화재단은 지역의 화두를 주제로 ‘지역연계 레퍼토리 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9년에는 ‘기획 부문’을 신설해 고양 지역의 아동청소년과 예술가들이 예술을 매개로 보다 실험적인 창작 과정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평화의 시작 미래의 중심, 고양’의 화두를 발전시킨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전문 예술가들과 지역 아동청소년들 간의 심도 있는 워크숍을 통해 스토리씨어터 작품 <오늘도 바람>의 오픈 리허설 발표회를 연 것이다. 지난 10월 18일(금) 고양아람누리 생활문화센터 연습마당에서 개최된 <오늘도 바람> 작품발표회에 참석했던 연극교육 전문가로부터 작품은 물론 창작과정 전반에 관한 평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고양문화재단의 ‘지역연계 레퍼토리 개발사업’을 통해 개발된 스토리씨어터 <오늘도 바람>의 작품발표회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매우 진지하고, 따뜻하고, 공연 팀과 관객 간에 매우 밀도 있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연 현장을 경험했다. 공연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공연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공연 종료 후, 이 작품 창작 워크숍의 참가자들이기도 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무척 흥미롭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작품에 대하여

제주4.3 모티브의 스토리씨어터

우선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오늘도 바람>이라는 제목의 이 공연은, 제주4.3을 다룬 그림책 <나무도장>(권윤덕 작)을 모티브로 삼아 재창작된 작품이다. 당시 참혹했던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가 중심인물인 이야기인데, 그림책은 그 소녀를 구출하고 길러준 어머니가 담담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반면, 공연에서는 소문과 의혹, 비밀 등으로 극적 요소를 강화하고 호기심 많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분한 소녀 ‘시리’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추리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공연 후 관객과 나눈 이야기에서 많은 어린 관객들이 이와 같은 추리 형식이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었다며 흥미로워했다. 극중 ‘시리’는 관객과 같은 또래인 열세 살로 설정되어 있었다.

공연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네 명의 이야기꾼들이 때론 바람이 되고, 때론 인물이 되고, 때론 공간을 이루거나 사물이 되기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스토리씨어터’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야기꾼들이 인물로 분했을 때뿐만 아니라, 바람이 되거나 나무나 동굴이 되었을 때에도 그 상황의 정서와 분위기를 십분 드러냄으로써 단지 기능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제주4.3이라는 굉장히 무겁고 참혹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바람의 은유와 더불어 현재의 열세 살 ‘시리’의 감성과 시선에서 바라보는 바가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지난 10월 18일 고양아람누리 생활문화센터 연습마당에서 열린 <오늘도 바람> 작품발표회.
고양시 아동청소년들이 창작 과정에 참여한 작품을 극단 ‘올리브와 찐콩’ 배우들이 시연하고 있다.

작업에 대하여

예술가와 아동청소년, 창작과정에서의 만남

<오늘도 바람>이 열세 살 ‘시리’의 감성과 시선으로 창작된 데에는 특별한 과정이 있었다. 고양문화재단 ‘지역연계 레퍼토리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프로젝트는 고양시의 아동청소년들과 예술가들이 ‘전쟁과 평화’라는 이슈를 가지고 함께 작업한 결과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극작가와 연출가, 배우들이 아동청소년들을 공연의 관객으로서만 만난 것이 아니라, 워크숍을 통해 창작과정 중에 그들을 색다른 방식으로 만났다는 점이다.

극작가이자 연극놀이 리더이기도 한 고순덕 작가는 <오늘도 바람>의 모티브가 된 그림책 <나무도장>을 바탕으로 백양초등학교 6학년 1반 친구들과 만났는데, 작가가 티칭아티스트로서 직접 워크숍을 진행했다. 또한 그 과정을 거쳐 쓰인 대본을 기반으로 연출과 배우 등 공연 창작팀이 백양초 6학년 1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창작 워크숍도 진행했다. 한국전쟁 전후 양민 희생사건을 어떤 시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할지를 6학년 친구들과 더불어 고민하고 모색한 것이다.

“처음엔 제주4.3을 더 깊이, 더 자세히 알리고 싶은 욕구가 강했는데, 막상 6학년 친구들과 창작워크숍을 함께하면서는 역사적 사실의 이면 즉,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상황까지 갈 수 있는지에 작품의 초점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보다 은유적으로 접근하게 됐지요.”

– 고순덕 작가

고순덕 작가는 인물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의 막연한 생각보다는, 관객으로 만날 6학년 학생들이 느끼는 친구 관계, 고민이나 감정 등을 탐험하면서 인물에 숨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지난 5월 28일 백양초등학교 6학년 1반 교실에서 이루어진 [1단계 극작가 워크숍]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을 모티브로 새로운 스토리씨어터 작품의 희곡을 창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를 창작과정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는 이번 작업이 어떤 경험이 되었을까? 우선 작가와의 워크숍이 신기했다고 말한다. 평소 작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 같이 연극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다들 들뜬 모습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짠하다’는 느낌까지는 없었는데, 창작팀과 워크숍을 하고 공연을 보니 머리로만 알던 것이 마음에까지 크게 와 닿았어요.”
“생동감이 느껴졌고, ‘만약 우리 엄마라면, 나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며 공감하게 됐어요.”
“창작 워크숍에서 경험하고 표현했던 것들이 공연 중간 중간 들어가 있어서 반가웠어요. 더 기억하면서 볼 수 있었어요.”

– 백양초 6학년 1반 학생들

창작자들과 워크숍을 함께 한 백양초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동청소년과 예술가(혹은 예술교육가)가 완성된 예술작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창작과정에서의 예술경험을 통해 어떻게 의미 있는 만남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창작자‧예술가는 아동청소년과 만나면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찾게 되고, 그들의 시선을 통해 다시금 작품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동청소년들은 작가와 배우 등 성인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교과서에서 지식 정보로만 다루어지던 역사의 사건을,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신기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자기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각자가 자기로서 경험해내고 즐거움과 배움을 얻는 미적 체험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

지난 9월 30일 백양초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이루어진 [2단계 극단 창작 워크숍]
팽나무, 동굴, 바람, 파도 등 <오늘도 바람>에 등장하는 중요한 무대 요소들의 시연화 작업을 했다.

공연 이후의 예술경험

‘감상자’를 넘어선 ‘예술적 파트너’

이러한 점은 공연 현장에서 공연을 마친 후, 진행된 교감의 시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연출가와 작가, 배우들이 모두 함께 어린 관객들과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공연 후 이루어지는 ‘관객과의 대화’는 대부분 관객이 공연을 보고 궁금한 점을 공연팀에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공연감상의 이해를 더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오늘도 바람> 종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쌍방향의 소통이 이루어졌다. 이영숙 연출가는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마지막 시리의 대사인 ‘이제 숨지마’가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이 이후의 장면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것 같아요? <오늘도 바람>의 연출자라면?”
“혹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나요?”
“만약 이 작품을 극장에서 공연한다면, 어떤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보면 좋겠어요?”
“제주 방언 등 혹시 모르는 말은 없었나요?”

– 이영숙 (극단 ‘올리브와 찐콩’ 대표)

질문을 받은 어린 관객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했다. 어린 관객들도 알고 있을 터였다. 창작자의 이러한 질문이 단지 공연감상을 묻고자 함이 아니라, 이후 이어질 창작 작업을 위해 자신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공연팀을 향한 관객들의 질문 중에는, 물론 작품 내용과 관련한 것들도 있었지만, “저희랑 했던 워크숍이 도움이 많이 되었나요?”라는 물음도 있었다. 연출가가 어떤 점이 워크숍 결과가 투영된 것 같은지를 되묻자, “팽나무 장면이요. 그리고 동굴 장면도요”라고 명확히 자신들이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모습이었다.

예술가와 아동청소년이 함께한 이러한 창작과정은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교육’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가 아동청소년을 어떻게, 어떤 관계로 만나야 하는가? 예술가와 아동청소년이 (교육자-학습자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언어를 매개로 만나고 소통하고 경험을 이룰 때, 그 안에서 발견과 배움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예술교육’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아동청소년을 가르침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빛깔을 가진 존재로서, 예술경험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일이다.

고양문화재단의 이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리뷰를 마친다.

글. 김미정(연극놀이 리더)

사진. 하경준(캐치라이트)

고양문화재단 ‘지역연계 레퍼토리 개발사업’을 통해 스토리씨어터 <오늘도 바람>을 함께 창작한 백양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들과 극단 ‘올리브와 찐콩’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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