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의 멋과 민화(1)

우리 문화의 멋과 민화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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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일
02015년 5월 1일

마음과 뜻을 그린 민화의 뿌리 중 하나

글. 윤철규/한국미술 컬럼니스트,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까치호랑이

<까치 호랑이> 종이에 채색 92x55cm 개인

 

 유명한 까치호랑이 그림 한 폭부터

우선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그림은,

까치 호랑이하면 먼저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그림입니다. 전체를 보면 소나무 아래에 호랑이 한 마리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습니다. 머리에 드리워져 있는 나뭇가지에는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이 호랑이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백수의 왕으로 용맹하고 위엄에 가득하기는커녕 보는 사람이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헤벌린 입 속의 이빨은 무시무시한 호랑이의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 등과 가슴에 그려진 문양도 제멋대로입니다. 얼굴과 가슴 쪽은 호랑이의 그것이 아니라 범의 문양처럼 보입니다. 등 쪽의 문양도 호랑이 가죽 흉내만 냈을 뿐 적당히 선을 긋고 색을 교차시키는 정도로 끝냈습니다.

마치 씨앗을 박아놓은 듯한 꼬리는 더 가관입니다. 무릎팍도 참 기막히게 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곁들여 머리위에서 무언가 말이라도 걸고 있는듯 보이는 새의 모습 역시 일반적인 화조화에 등장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입을 반쯤 헤벌린 모습은 영리하거나 귀여운 모습과 영판 거리가 먼 채 어딘가 나사가 풀린 게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말입니다.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잘 그리지도 못한 그림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편한데에서 오는 정겨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마치 갓난아이의 순진무구한 얼굴이라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인상, 느낌, 감정이 바로 민화에 담긴 고유한 매력일 뿐 아니라 민화가 다른 정통(?)의 그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만드는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별(別)세계가 만들어지게 됐을까 하고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를 확인하는 데에는 보다 광범위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의 민족성 내부에 담겨 있는 공통의 심리적 내지는 미학적 특성, 특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이 분야는 미술사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그쪽 전문가에게 일임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미술사, 특히 조선시대후기 미술사 속의 어떠한 환경이 민화의 탄생을 도왔고 또 광범위한 수용을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약간 살펴보고자 합니다.

순진무구하다는 것은 선악(善惡)이나 미추(美醜)의 세계와는 전혀 별개입니다.

거기에서 이상이나 합리적 사고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마음에 들면 공연히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는 마음 내지는 감정의 세계와 직결돼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흔히 이처럼 감정이나 마음에 관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미술 전체의 역사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넓게 보아 조선시대 미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미술사를 보면 어느 때에는 이치, 즉 이성적 사고를 중시한 때가 있었으며 또 어느 때에는 이성보다는 마음을 앞세운 감정이나 취향을 중요시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를 좀 유식하게 말하면 이치를 중시한 것은

주지주의(主知主義)적 경향이라고 합니다.

또 그리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의 감정을 중시하는 쪽은

주정주의(主情主義)라고 부릅니다.

주지주의적 경향을 그림에 직접 대입해 설명하자면 객관적인 사실 묘사를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주정주의는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그리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에 충실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때때로 그려진 내용이 어떤 외부의 사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을 상징하는 듯하다고 해서 상징주의적 경향을 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경향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존재했습니다. 고대부터 시작된 미술사를 보면 상당기간 동안 이 두 경향은 어느 때에는 한쪽이 우세하면 다음에는 다른 한쪽이 두드러지는 등 적당한 균형을 유지해왔습니다.

만일 미술사의 흐름이 계속해서 이런 균형이 유지했다면 먼 훗날 조선에서 민화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균형이 균열이 생기면서 어느 한 쪽이 결정적인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주정주의입니다. 이 주정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인화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인화 정신 내지는 이론은 동양미술이 서양미술과 구별되는 중대한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민화 탄생의 멀고 먼 뿌리가 문인화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하면 다분히 뜻밖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사물의 객관적 묘사, 표현보다 감정이나 뜻을 중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민화는 이 주정주의 경향이 극단(極端)까지

발휘된 곳에서 탄생한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문인들이 그림을 그린 것은 오래전부터이지만 문인화(文人畵) 장르로서 자리를 잡은 것은 문인관료사회가 정착한 송나라 때부터입니다. 이 당시 문인이자 관료이면서 아울러 그림에 재주가 있었던 이른바, 문인화가들은 그림 속에 이치(理致)-자연의 운행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근본적인 이치-가 담겨 있을 것을 추구했습니다. 이 이치론은 사실적인 표현과는 조금 다른데 말하자면 구름이나 물, 안개를 그릴 때에는 실제 고정된 형상이 없으므로 구름이 생기는 이치나 물이 흐르고 파도치는 이치를 생각하며 그리라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은 다음 세대인 원나라에 들어가면 조금 변형이 됩니다. 즉 그림 그리는 문인의 뜻, 즉 의(意)에 따라서 그리라는 주장으로 바뀝니다. 당시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한족 출신의 문인들은 관료로 진출할 길이 막히자 서로의 처지를 격려하면서 그림과 글씨로서 심회를 달래는 불우한 생을 보냈습니다. 이때 그린 그림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 담긴 풀 수 없는 감정과 마음, 뜻을 화선지 위에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래서 잘 그리고 못 그리는 일이나 닮고 안 닮고는 두 번째, 세 번째 문제였습니다.

송나라에서 원나라를 거쳐 조금 변형되고 추가된 내용은 명나라 말기에 동기창(董其昌)이라는 화가이자 대이론가가 출현해 정교한 이론으로 다듬으면서 이른바 문인화론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교양이 높고 학식이 풍부한 문인이라면 가슴 속의 뜻에 따라 그려도 그림 속에는 이치가 저절로 담겨 있기 마련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객관적 사실주의와 무관하게 생각나는 대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붓을 들어 뜻과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는 문인화 정신은 이후 중국화단을 지배하는 메인 이론이 되었고 조선에는 후기무렵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게 됐습니다.

(이 글은 다음 7월호로 이어집니다)

 

 

고사인물도 병풍 일부 종이에 채색 각 76.0x33.0cm 개인 (1)고사인물도 병풍 일부 종이에 채색 76.0x33.0cm개인 (1)——————————————

우리문화의 멋과 민화전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기간        2015년 5월 29일(금) ~ 9월 20일(일)

시 간       화~일요일,  10:00am ~ 6:00pm

입장료   일반 5천원, 청소년 및 어린이 4천원, (20인 이상 단체  1천원 할인)

* 만 2세 이하 65세 이상, 국가보훈대상자 및 장애인 무료

문의·예매   031-960-0180 / 1577-7766/[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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