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의 멋과 민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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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뜻을 그린 민화의 뿌리 중 하나

글. 윤철규/한국미술 컬럼니스트,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이 글은 지난 6월호에서 이어집니다)  

 

까치호랑이

<까치 호랑이> 종이에 채색 92x55cm 개인

 

우선 심상치 않은 까치호랑이 그림 한폭을~!

지난 6월호에 유명한 까치호랑이 그림 한 폭부터 우선 소개했습니다. 이 그림은, 까치 호랑이하면 먼저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그림입니다.

왠지 마음이 끌리고,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고,
편한 데에서 오는 정겨움까지 – 이것이 민화의 매력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말입니다.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잘 그리지도 못한 그림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객관적 사실 묘사를 중시하는 주지주의, 주관적 감정과 느낌에 충실한 주정주의 ~!
주정주의 경향의 극단에서 탄생한 그림, 민화
가슴 속의 감정과 마음, 뜻을 쏟아 부은 그림  

고사인물도 병풍 일부 종이에 채색 76.0x33.0cm개인 (1)

<문자도-충(忠)> 종이에 채색 69.7×34.6cm 선문대 박물관

 

시와 글씨, 그림에 능해야 했던 조선시대 관료, 문인사회

‘생각과 뜻을 그린다’는 문인화의 이론이 좋은 구실이 돼

조선은 그 무렵 이미 중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 정도의 수준 높은 문인관료사회가 정착돼 있었습니다. 관료는 대개 문인 출신이 등용됐습니다. 더욱이 고급 관료로 가면 갈수록 문인적인 교양과 재능을 인정받아야 행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사회에 문인화 이론이 소개된 것입니다.

이 이론이 전해짐으로서 문인사회가 크게 바뀌게 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문인 행세를 하려면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어느 정도 쓰면 되었던 것에서 그림에 대한 교양이 추가된 것입니다. 즉 교양이 있는 문인이라면 그림을 감상할 줄 알아야 했고 나아가 그림을 어느 정도는 그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만큼은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없는 분야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시를 짓고 즐기며 글씨를 나름대로 잘 쓴 문인의 수는 많아도 그림을 잘 그린 문인화가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문인의 필수 교양으로 편입된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어 많은 문인들이 그림을 직접 그렸고 또 감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럴 때 그림에 자신이 없는 문인화가들에게 이른바 그럴 듯한 구실 거리가 된 것이 문인화 이론 속에 들어있는 ‘생각과 뜻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좋은 구실이 됐습니다. 초보 문인들이 그린 좀 모자란 솜씨는 당연히 양해를 받았고 또 객관적으로 사실인 묘사를 하지 않아도 빠져나갈 길이 공개적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자 누구나 할 것이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뜻대로 그림을 그리게 됐고 또 큰 유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 지나쳤는지 대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이 보다 못해 한 마디 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한때 외삼촌 되는 문인화가 윤용(윤두서의 손자)의 그림을 보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요즘) 시원치 않고 모자란 그림쟁이가 모지랑 붓을 가지고 먹물을 찍어서 제멋대로 기괴한 그림을 그려놓고는 ‘나는 뜻을 그렸지 겉모양을 그린 것은 아니다(畵意不畵形)’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꼬집은 것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이렇게까지 말한 것처럼 객관적 사실성과 무관하게 ‘자기의 뜻과 생각을 그리는 일’은 19세기 들어 미술계의 대합창이 됐습니다. 사실적인 묘사와 무관한 그림 또 잘 못 그린 그림에 대한 사회적으로 용인 내지는 묵인하는 분위기가 이 시대에 생겨난 것입니다.

 

18세기 르네상스, 영정조시대의 그림 수요 폭발적 증가

민화 그리는 무명의 직업화가, 적극 활동을 시작한 시기

고사인물도 병풍 일부 종이에 채색 각 76.0x33.0cm 개인 (1)

<고사인물도> 병풍 일부, 종이에 채색 각 76.0×33.0cm 개인

여기에 민화의 등장을 부추킨 또다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18세기 들어 조선은 영조와 정조와 같은 위대한 군주가 등장해 사회가 안정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8세기 르네상스라고 말할 정도로 각 분야의 문화 예술이 발전한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까지 문인 사대부와 같은 사회 상류층 이외의 계층, 즉 중인이나 평민 계층에서도 문화를 즐기게 된 것입니다.

미술 쪽에서는 그림의 수요가 늘어나 직업 화가들이 생겨난 것도 이때입니다. 이들 중 일부가 정식 교육과 무관한 채 시장에서 그림을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는데 이들이 바로 민화를 그린 무명의 화가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적 묘사와 상관없이 못 그린 그림도 ‘뜻을 그렸다’고 해도 그대로 용인되거나 허용되는 그런 사회 분위기가 큰 배경이 된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 정치학자도 민화가 등장하는 시기에 조선 사회에서는 예술 분야에 통제나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이른바 그를 넘어서는 일탈에 대한 사회적 허용치가 매우 높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한국의 7,80년대 정치적 상황을 분석한 연구자로 유명한 그레고리 헨더슨입니다. 헨더슨 교수는 젊은 시절 주한미대사관에 근무하면서 한국 도자기에 매료된 수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중국의 도자기와는 물론이며 일본(그는 일본 근무도 했습니다)과도 다른 한국 도자기의 특징을 투박함이나 무게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격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를 추적하면서 그것은 전반적으로 공인된 기법이나 형식이 도공들에게 강요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정치학자답게 조선사회의 사회적 구조가 그를 용인했다고 분석한 것입니다. 조선 사회는 일본이나 유럽처럼 사회의 계층별 위계질서가 심하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형화된 규칙이나 규율을 엄격하게 준수해야하는 통제나 규제가 상대적으로 훨씬 약했다고 보았습니다. 더욱이 중앙의 정치권력이 약화된 시기에는 이런 관용도가 훨씬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조선시대 후기의 도공은 중국이나 일본의 도공들보다 훨씬 자유로운 환경에서 도자기를 만들었고 또 자신이 봉착한 많은 제작상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규정된 어떤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도공의 순간적인 취향이나 자유의지(spontaneity)에 따라 마음대로 문양을 그리게 됐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도자기를 설명한 글이라 민화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정통 이론이나 기법과 무관한 채 활동한 무명화가들,
어떤 나라에도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민화 영역 넓혀

하지만 당시 서울이든 지방이든 시장을 상대로 한 무명 화가들은 정통 회화이론 밖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은 정통 쪽에서 말하는 이론이나 기법과 무관한 채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잘못 그려진 그림조차도 당시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용인되고 있었던 ‘뜻을 그린다’는 분위기에 편승해 존재의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어떤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민화의 세계가 탄생하고 뿌리를 내리게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민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는 것은 익숙함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 역시 (회화 이론이나 감상 규칙과 같은) 규율이나 통제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오세창편 한국미술연구소기획『국역 근역서화징』윤용조 (시공사)

**김정기지음 『미의 나라 조선』(한울 아카데미)

 

150529우리문화의멋과민화전(8)

150529우리문화의멋과민화전(25)150529우리문화의멋과민화전(19)

 

서민들의 생활 속에 살아있던 그림, 자유로운 상상의 회화인 ‘민화’를 주제로 한

‘우리 문화의 멋과 민화’展

조선시대의 궁중 회화와 사대부의 그림을 토대로 일반 대중들이 자신들만의 예술 세계로 창조해 낸 민화는 한국적 미의식과 정체성을 대표하는 동시에 독창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 미술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인 민화는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면이 존재하지만 표현 형식이나 색채 간의 조화 등에 있어 시대를 앞선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현대미술에서나 보일 법한 자유로운 시점과 변형된 원근법, 비례감과 입체감의 무시 등이 상당히 전위적이기도 합니 다.

150529우리문화의멋과민화전(42)

이번 전시는 민화에서 주로 그려졌던 소재인 꽃과 새, 동물, 산수, 인물, 문자와 책가 등 모두 여섯 섹션으로 나눠 구성돼 관객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전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150529우리문화의멋과민화전(36)

전시에서는 민화에 내재한 이미지와 색채의 주술성, 힘에 주목한 박생광, 민화가 가진 소재의 해학성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김기창, 유양옥 등을 비롯해 문자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이응노, 남관, 류준화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또 십장생의 세계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오승우, 민화 풍의 풍경 그림을 현대적으로 담아낸 이희중, 김선두, 서은애, 꽃과 새의 풍성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색채에 주목한 김근중의 작품도 선보입니다. 이와함께 플라스틱과 고철 등 새로운 소재로 민화의 해학을 유쾌한 조각으로 표현한 서희화, 민화의 상징성과 이야기 그림의 특징을 따라 지금 우리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홍지연, 책거리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이지숙, 임수식, 김지평 등의 작품이 등장합니다.

부대행사로는 전시 작품을 응용한 만들기, 그리기, 색칠하기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나도 작가’ 프로그램과 ‘미니병풍 만들기’, ‘한지 컵받침 만들기’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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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의 멋과 민화전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전시기간 2015년 5월 29일(금) ~ 9월 20일(일)
시 간 화~일요일 10:00am ~ 6:00pm
입장료 일반 5천원, 청소년 및 어린이 4천원, (20인 이상 단체 1천원 할인)
* 만 2세 이하 65세 이상, 국가보훈대상자 및 장애인 무료
문의·예매 031-960-0180 / 1577-7766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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