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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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승랑 인터뷰

비가 내리던 날, 소설가 최승랑은 자신의 첫 소설집 표지 색깔과 같은 분홍색 우산을 쓴 채 인터뷰 장소인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으로 사뿐히 들어왔다. 언제 행복한지 물으니 “(소설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처음 두드리는 순간”이라 답한다. 문학을 꿈꾸던 소녀는 소설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들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2012년 아람문예아카데미 ‘소설창작연습’을 만나며 소설가로 거듭났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2016년 <작가세계> 겨울 호에 작가세계 신인상 결과가 공개됐다. 시와 평론 부문 당선자는 없었고, 소설 부문 가작 당선자에는 ‘최승랑’이 그 이름을 올렸다. 당선작 <좁은 방>에서 화자인 연주는 화재로 동생을 잃었다. 어머니는 화상으로 고통받고 아버지는 가족 곁을 떠났다. ‘마지막’이라 여겨지는 순간에도 연주는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방에서 죽은 동생의 흔적을 발견하며, 떠난 사람들의 기억은 아직 자신의 곁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여긴다. 연주에게 사랑은 시작도 끝도 확실하지 않지만, 삶을 지탱해주는 마음의 정거장이다.

‘사랑’은 최승랑의 첫 소설집 <추억의 습관>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작가의 말과 추천사, 해설에는 수도 없이 나온다. 익숙하지만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사랑’. 최승랑은 왜 사랑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랑’이란 그 자체로 행복감을 주니까요. 고통스럽고 힘든 경우도 있지만, 당사자들은 그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덕분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행복을 느끼죠. 사랑을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말하는 거예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꼭 다루어야 하는 테마라고 생각했어요.”

<추억의 습관>에서 최승랑은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루기도 하지만 대개는 두 사람의 뜨거운 연애를 다룬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거나 순탄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위에서 그가 언급했듯,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순간에도 뜨겁게 불타오르는 감정에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다루고자 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사랑도 식는 시점이 있기 마련이에요. 식었다는 말은 끝났다(Ending)는 뜻도 있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어요. 수없이 담금질을 한 후에 단단해진 쇠처럼 말이죠.”

<추억의 습관>에 등장하는 연인들은 대개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끝끝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누군가는 후회하며 지난 순간을 그리워한다. ‘행복해 보이진 않는’ 결말의 소설이 대부분이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열애와 갈등, 좌절과 실연을 거치며 사람들이 한결 단단해지듯이.

소설가 겸 평론가 김나정은 소설집 뒤에 실린 해설에서 “사랑에 대한 검질긴 착각은 자기애에 비롯된건 아닐까. (중략)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애에 가깝다. 나는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고 썼다. 그러니까 이 글에 따르면 <추억의 습관> 속 인물들은 결국 타인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 최승랑은 <추억의 습관>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다. 당신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순간이 결국 우리의 행복을 만든다는 사실이 그것은 아닐까. 

소설을 사랑하는 마음

십 대 시절부터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 빅토르 위고 등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대학에서 경영학도가 됐고 직장인이 됐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다 2012년 우연히 마주친 아람문예아카데미 ‘소설창작연습’ 수강생 모집 공고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있었어요. 아람문예아카데미를 만나면서 그 욕망을 풀 수 있었죠. 이순원 강사님(소설가)은 물론 문우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꺼내기 어렵던 ‘문학’ 이야기를 실컷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욕망은 욕망일 뿐, 진짜 이야기를 만들어 소설로 꾸며내는 과정은 지난한 일이다.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을 썼다가 합평에서 어설프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4년간 소설창작연습에서 담금질을 거듭한 덕분에 그는 단단해졌고, 2016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등단 이후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2017년 <작가세계>가 휴간을 선언하며 최승랑은 ‘친정을 잃은’ 신세가 됐다. 길 잃은 유목민 같았으나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다른 문예지들에서 청탁이 들어왔다. 그렇게 모인 작품들을 꾹꾹 눌러 담아 소설집 <추억의 습관>으로 펴냈다.

최승랑은 소설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일상, 때때로 찾아오는 권태와 불안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이 그의 곁에 있었던 덕분이다. 그 소설을 나누었던 소설창작연습은 그에게 각별할 수밖에. 소설창작연습에서 처음 합평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자신의 소설에 대한 문우들의 평이 ‘온몸에 촉수가 돋아난 것’처럼 민감하게 다가왔다.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첫 합평 때는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기진맥진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합평이 제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됐어요. 합평 수업을 통해 제 장점을 발견했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었죠. 아람문예아카데미의 소설창작연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부담감이 없어요. 전에 소설을 썼든 아니든 누구나 참여 가능하죠. 이순원 강사님처럼 수준 높은 소설가를 강사로 만날 수 있다는 점,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과 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망설이지 말고, 흔들리지도 말고

소설을,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문학의 위기가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코로나19가 퍼진 이후에는 문학을 포함한 예술 생태계 자체가 위기라는 말이 거론되고 있다. 책을 사서 읽지 않는 사람들과 문학의 위기,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는 예술 생태계. 이런 시대에 작가를 꿈꾼다는 것은 모험일까.

“망설이지 말고, 흔들리지도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글을 사랑하며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문학을 하는 목적이 분명하잖아요? 목적이 분명하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문학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꿈꾸는 일이죠.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세요. 흔들리지 말고 쓰세요.”

최승랑 본인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2012년 다시 소설의 꿈을 붙잡은 뒤 2016년 등단하기까지 행복과 사랑만 가득했을 리 없다. 마찬가지로 등단한 이후 2020년 12월 첫 책을 내기까지 마냥 희망만 가득하지는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했던 과정에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명제였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듯 글을 써나갔다.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과 그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깊이였다. 한 가지 더한다면, ‘소설창작연습’의 존재일 게다.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며 걷는 동료만큼 든든한 의미도 없을 테니까.

‘사랑’은 <추억의 습관>에서 다루는 중요한 테마였지만 그것이 최승랑 문학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김별아의 <구월의 살인> 같은 역사 추리소설에도 흥미를 느낀다. 자료 조사부터 쉽지 않은 과정이 되겠지만 최승랑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읽고 생각하고 쓰면 된다. 최승랑은 그 단순한 명제를 사랑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사랑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진부한 단어라고 생각했던 ‘사랑’은 최승랑의 소설 안에서 다양한 옷을 바꿔 입으며 자유롭게 날갯짓을 펄럭였다. 실은 우리 삶 곳곳에 사랑이 가득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발견하지 못했을 뿐 사랑은 원래 있어야 할 그곳에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지혜 작가는 작년에 펴낸 자신의 산문집 제목을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라 지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최승랑이 세상에게,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학을 사랑한다면, 삶과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글 말미에 이 말을 남겨둔다.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글. 노윤영(플러스81스튜디오)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올해로 9년차를 맞는 지속 가능한 예술의 힘,
소설가 이순원과 함께하는 ‘소설창작연습’

고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람문예아카데미는 국내 최고의 예술인, 강사진을 모시고 전문적인 인문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소설가 이순원과 함께하는 ‘소설창작연습’은 창작방법론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창작 실습과 합평을 병행하여 수강생들의 소설 창작 입문을 돕고 있다.
2012년도에 시작되어 올해로 9년차가 된 이 수업은 강나윤(2020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이성상(2019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대상), 이수안(2019 김유정신인문학상), 이현직(2018 <강원작가> 신인상), 임수정(2020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최승랑(2016 <작가세계> 신인상), 최지연(2020 <평사리문학대상> 신인상) 등 다수의 소설가를 배출하며 지속 가능한 예술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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