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음향으로 채운 가을과 겨울 사이

당신의 몸이 하나의 이야기로 존재한다는 증거
2021년 11월 24일
명품 배우들이 들려준 연극의 매력
2021년 12월 22일
62021년 12월 22일
‘아람 로열 클래식 3 – 문태국 & 임동혁’ 리뷰

모든 공연은 필연적으로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기에 연주자로 사는 운명은 꽤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적이 없지는 않아 아주 드물게 연주자들이 만족하는 공연도 존재하는데, 지난 11월 27일(토)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의 연주회가 그랬다.

서로를 조율하며 완성시킨 변주곡

좋은 연주회는 좋은 프로그램 선정에서 시작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개성이 강한 두 연주자는 각자가 가진 패를 서로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첼리스트 문태국은 멘델스존의 작품을 프로그램으로 제시했는데, 결과적으로 두 연주자의 취향을 잘 아우르는 프로그램이 준비된 셈이었다.

공연은 베토벤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7개 변주곡’으로 시작했다. 당시 많은 작곡가들이 그러했듯 베토벤 또한 유행하던 오페라 아리아를 주제로 한 변주곡을 적지 않게 남겼는데, 그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작품을 저 구석 한쪽으로 미뤄두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이 변주곡의 원 주제는 다른 사람도 아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가? 이미 훌륭한 작품에는 무언가를 더하기가 힘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남긴 선율을 그만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변주해내며 변주곡이라는 장르가 갖춰야 할 꼴을 부끄럽지 않게 챙긴다. 모차르트가 모차르트이듯, 베토벤도 베토벤인 것이다. 두 연주자는 모차르트에서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음악을 섬세하게 한 음, 한 음 연주해나가며 자신과 서로의 컨디션을 조율했다.

첼리스트 문태국과 피아니스트 임동혁

폭발적 에너지로 쏟아낸 압도적 음향

이어지는 작품은 멘델스존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장조로 쓰인 멘델스존의 작품에는 마음의 상처 같은 것은 가볍게 털어버리겠다는 건강한 청년의 마음이 담겨 있다. 두 연주자는 밀도 높은 음악이 담긴 1악장부터 리허설 때는 단 한 번도 쏟아본 적 없을 폭발적 에너지로 압도적인 음향을 쏟아냈다.

여유롭게 선율을 연주하다가도 돌연 고삐를 잡아채듯 활의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문태국의 첼로 뒤로는 임동혁이 한 음도 허투루 흘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피아노를 꽉 붙들고 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음들이 공연장을 채웠을까? 1악장이 끝난 이후, 음악만을 보고 있었던 두 연주자는 각자의 표정을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짧지만 확실하게 씩 웃어 보이는 둘. 그건 누가 보아도 지금 공연이 잘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두 연주자가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는 동안, 겨울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있었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채운 첼로와 피아노 듀엣

인터미션 후에는 단 하나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흐마니노프는 바위처럼 단단한 외형에 여린 마음을 숨겨둔 음악가였고, 그의 첼로 소나타는 작곡가의 겉과 속이 동시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 공연장을 채우고 있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란 과연 어떤 연주일까?

실제로 이번 연주의 몇몇 순간에 객석의 모든 청중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떼어내 무대 위로 올려놓은 듯한 묘한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제야 ‘무대와 객석이 한마음이 되었다’는 뻔한 수사가 이와 비슷한 체험에서 왔음을 알게 되었다.

공연의 앙코르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였다. 가을과 겨울 사이, 첼로와 피아노 듀엣으로 듣는 「보칼리제」만큼 이 시절에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앙코르를 끝으로 오늘의 청중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의 다 저물어버린 해 뒤로 제법 쌀쌀해진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두 연주자가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는 동안, 겨울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있었다.

글. 윤무진(음악칼럼니스트)
사진. 노승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