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이 하나의 이야기로 존재한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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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극 <돛닻> 리뷰

지난 10월 29일(금)~30일(토)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움직임극 <돛닻>이 공연되었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선태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그의 몸이 거쳐 간 역사, 그 몸에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 가운데 그가 마주친 운명적인 순간들을 항해중인 배가 만나게 되는 ‘바람’에 비유한다.

이 글은 고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2013년 ‘Mnet 댄싱9’에 출연했던 무용수 이선태를 또렷이 기억한다. 큰 키에 몸선을 길고 과감하게 쓰면서도 정교하고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그를, 그가 만들어냈던 인상적인 순간들을 사진처럼 꺼내어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무용수의 ‘한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이선태를 아느냐?’고 물어온다면, 전혀 확신 없는 말투로 이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이 무용수의 삶에서 ‘댄싱9’이나 LDP 무용단에서의 활동이 어떤 순간에, 어느 곳을 향해 위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서 그의 이름을 다른 무용수의 이름으로 바꾼다한들, 대답이 달라질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한편으론 동시에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관객은 어떤 시선으로 한 무용수/배우의 몸을 바라보게 되는가, 그 몸이 거쳐 간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몸의 역사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자주 있긴 했던 걸까. 움직임과 언어가 덧씌워진 장면으로 기억되는 몸을 넘어서, 그 몸에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을 어떻게 펼쳐 볼/보일 수 있을까.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움직임극 <돛닻>

대체 그 바람들은 뭐였을까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움직임극 <돛닻>(연출 민준호)은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선태의 자전적 이야기를 1인극 형식으로 풀어내는 공연이다. 이선태와 함께 이 극의 안무를 맡은 김설진이 때때로 무대에 등장해 대사를 하거나 짧은 2인무를 추기도 하고, 무대 대도구 등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대부분의 시간동안 이선태는 무대에서 홀로 자신의 이야기를 견인해 나간다.

이 공연에서, 그는 말을 하며 춤을 춘다. 언어만으로는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 마음, 몸만으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 이 두 요소에서 서로에게 결여된 부분을 채우려, 그는 언어와 몸에 모두 조금씩 기대어 가며 자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가능한 전부 전달하고자 한다. 그의 화술이 여느 배우처럼 듣기 좋게 다듬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 특유의 (연기되지 않은) 어눌한 말투는 그를 자연인 이선태로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든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움직임극 <돛닻>

이선태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용수로서 맞닥뜨렸던 선택의 순간들, 혹은 자신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왔던 운명적인 순간들을 항해중인 배가 만나게 되는 ‘바람’에 비유한다. 길을 나선 배는 돛을 펼쳐 바람을 타며 나아가고, 그렇게 흘러간 곳에 닻을 내려 잠시 머문다. 그리고 때가 되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레 다시 올라타거나, 자신을 힘차게 떠밀어줄 바람을 직접 찾아 닻을 걷고 돛을 올려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그는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그 주변을, 자신이 바람을 타고 그려온 항로를 바라보며 묻는다. “대체 그 바람들은 뭐였을까요?”

그는 어쩌다 지금 이곳에서, 무용수로서는 낯선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며, 새로운 춤을 추고 있는 걸까. <돛닻>은 그를 여기까지 떠밀어온 바람들을 하나씩 되짚어 거슬러 올라가며, 결국 현재 지금 이곳에서 그를 춤추게 만든 기원을 찾는다.

그 바람의 역사를 되짚기 전, 그는 이 바람이 마치 자신이 소유하게 된 자전거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대에 등장한 자전거는 그가 아주 예전에 오사카에 갔을 때 발견한 것으로, 본체를 분해하고, 값비싼 추가 물류비를 내는 등 갖은 애를 써서 한국까지 가져온 것이다. 자신을 사로잡는 것, 그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것이라면 그는 기꺼이 그 순간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겁 없이 행동한다. 지체 없이 다가간다. 올라타고, 나아간다. 그 매혹이 이선태를 움직인다. “대체 자전거의 어떤 부분이 날 건드린 걸까? 내가 살아온 것과 관련이 있겠죠?” 그는 매순간 자신의 모든 선택이 자신의 과거와 어떤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가 자전거를 무대 뒤 테이블에 거꾸로 세워 올리고, 뒷바퀴를 돌린다. 뒷바퀴를 돌릴 때마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불빛처럼 후미등이 깜빡이고, 뒷바퀴가 빙그르르 구르면, 무대의 시간은 한 사건의 뒤로, 또 그 사건의 뒤로, 점점 과거로 향하게 된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움직임극 <돛닻>

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이선태가 가장 처음으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는 최근 자신이 오랫동안 머물러있던 어떤 상태에 대한 이야기다. 이 첫 이야기가, 그가 어째서 지금 <돛닻>의 무대 위에 서 있게 된 것인지, 대체 어떤 바람이 불어왔던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신경 쓰던 그는 그 시선이 두려워 방안에 틀어박혀 몇 달간 헤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천으로 눈을 가리고 춤을 추었고, 그걸 영상으로 기록하게 된다. 무대 위 스크린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듯 온몸으로 절규하고 있는 이선태가 눈을 가린 채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위 이선태도 영상에서처럼 눈을 가리고 영상 속 자신과 함께 춤을 춘다. 영상 속 과거의 그와 무대 위 현재의 그의 몸이 겹쳐지고, 흩어진다. 춤추기를 멈추고 영상 속 자신을 바라보던 이선태는, 자신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자 비로소 자기만의 독특한 움직임을, 그 고유성을 새로이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움직임극 <돛닻>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을 던질 때 즈음, 이선태는 자전거 뒷바퀴를 다시 한 번 돌리며, 댄싱9에서 그의 존재를 화려하게 각인 시켰던 드래프트 안무를 재연한다. 열렬한 심사, 대중들의 감탄과 환호, 기세등등해진 ‘나’, 하지만 자신의 소망처럼 무용의 대중화를 실현시키지는 못하고, 빠르게 좌절되고 쉽게 잊혀졌다. 단체를 설립하고, 댄싱9 시즌3에도 나가지만 기대하던 반응을 얻지는 못한다.

그가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고 싶어 하는 것과, 내가 추고 싶은 춤은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즉흥춤에 몰두하던 한때의 바람이 이미 그 사실을 일깨워준 바 있고, 그보다 이전엔 (사람들이 ‘안 된다’고 외치더라도) 추고 싶은 춤을 춰서 콩쿠르를 석권하던 제법 큰 풍랑에 몸을 실었던 적도 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춤추고 싶어 하는 기저에는 자신의 춤으로 억압에 거세게 저항하던 러시아 무용수 미하일 바르시니코프의 존재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한 순간’을 존재하게 만들었던 그 ‘그 이전의 순간들’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마다의 춤을 재연해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몸에서 온몸을 튕겨내는 강한 비트가 전류하듯 지나가고, 육체를 유연하게 뻗어내며 강렬한 시선을 던지는 몸이 등장했다가, 바르시니코프의 저항처럼 무릎을 바닥에 찍어 내리며 춤을 추는 이선태가 우리 앞에 선다. 결국, 그를 계속해서 춤추게 만들었던 ‘바람’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고, 표현에 대한 결핍이었고, 자기성에 대한 갈구였다.

거대한 이야기가 되어

그를 이곳까지 밀어와준 바람들이 무대 위에서 세차게 넘실거린다. 그가 정박했던 자리와 바다의 길목들과, 거세게 출렁이는 파도, 유유히 흘러가는 바람이 객석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떠내려간다. 무대 위로, 그의 몸에 쌓여있던 이야기가, 그 역사가 곳곳에 펼쳐져 그만의 지도를 그린다. 자기 몸에 축적된 이야기들을 한 꺼풀씩 벗어 무대 위에 올려놓은 이선태는, 이제 민낯으로, 홀홀한 몸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그는 여전히 홀로 서 있지만, 더 떳떳한 모습으로, 더 솔직한 태도로 우리를 바라본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선태가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공연의 첫 장면에서 무대 위에 조명으로 그려진 선을 따라 조심스럽고 위태롭게 발레 동작들을 재연하던 그는, 이번에는 그 동일한 선 위에서 더 자유롭게 춤춘다. 규칙이나 강요 없이, 그 스스로 자신에게 집중하며, 이선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들을 행한다. 지금 이 무대는 그에게 어떤 바람이 될까. 어떤 바람이 되어, 그를 이 다음의 곳으로 이끌게 될까.

나는 여전히 이선태를 모른다. 그의 몸 곳곳에 쌓였던 기억들 중 과거의 몇 가지 이야기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행위자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되어 존재한다. 그는 또 이후로 더 많은 이야기를 몸 곳곳에 써내려갈 것이다. 이 글이 그 항해의 기록들 중 극히 일부가 되길 바랄 뿐이다.

글. 박다솔(공연평론가)

고양문화재단에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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