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콘트라베이스는 없다

가장 아래로부터 바라본 인간의 역사
2019년 4월 2일
이웃 예술가와 함께하는 미술감상 교육 1기 모집
2019년 4월 15일
92019년 4월 15일
2019 아람 시그니처 클래식 1 – 바시오나 아모로사

무릇 음악은 악기를 직접 마주하여 소리를 듣고 경험하는 것이 좋다. 콘트라베이스처럼 평소 그 소리를 단독으로 듣기 어려운 악기의 음악회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오는 5월 17일(금)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에서는 콘트라베이스가 무려 4대나 무대 정중앙에 서 있는 독특한 구도를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콘트라베이스 앙상블 바시오나 아모로사가 9년 만의 내한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오랜 기억

병이라면 병이리라. 필자는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공연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언제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를 찾아본다. 그리고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이 작품의 유일한 등장인물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어느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며 콘트라베이스를 소개한다.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라면 하지 않을 말들을 하면서.

“만약 베이스를 빼놓는다면 음악가들은 자기가 지금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소돔처럼 엄청난 소음에 휘말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슈베르트의 나단조 교향곡에서 베이스가 빠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2008.

슈베르트 8번 교향곡 ‘미완성’ (빈 교향악단 연주)

 

그렇게 한참을 베이스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다가 연주자는 악기를 잡는다. 그리고 활을 현에 거칠게 문질러 소리를 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콘트라베이스의 소리는 그토록 열심히 설파하던 악기의 ‘중요성’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거의 음이라고는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뭔가 서로 문지를 때 나는 소리 같은,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하나의 음이라기보다는, 뭔가 절박한 것도 같이 바람결처럼 그냥 휙 지나가 버리는 소리 같은 거지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2008.

그러다가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악기는 돌연 삶의 거대한 무게를 짊어진 듯이 행동한다. 연주자는 악기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 모습이 마치…… 항상 몸이 아픈데도 아무도 돌보아 주지도 않는다고 언제나 불평이 많으셨던 우리 친척 가운데 한 아저씨처럼 보인답니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2008.

그렇다. 오랫동안 콘트라베이스는 필자에게 왠지 모를 ‘소외감’이 묻어나는 악기였다. 거기에다가 개인적인 몇몇 기억, 예를 들어 대학 시절 콘트라베이스 과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콘트라베이스들, 악기를 옮기기 위해 차 뒷좌석을 개조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덧붙이면서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의 정체성(?)을 완성한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번 원고를 통해 소개할 어느 연주회를 앞두고, 필자는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잠시 옆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 연주회의 주인공들은 내 마음 속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악기를 짐처럼 여기지 않는다. 악기 앞에서 주눅 드는 경우도 물론 없다. 오히려 콘트라베이스가 아니면 자신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연주하는 사람들의 단체, 바로 콘트라베이스 앙상블, 바시오나 아모로사(Bassiona Amorosa)다.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바시오나 아모로사 연주)

콘트라베이스계의 슈퍼스타들

바시오나 아모로사, 우리말로 하면 ‘베이스를 사랑하는’ 정도가 될까? 이탈리아의 베이스 명인이자 작곡가인 조반니 보테시니의 작품 ‘사랑의 열정’(Passione Amorosa, 파시오네 아모로사)에서 그 이름을 따온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독일 뮌헨 음대의 클라우스 트럼프 교수가 1996년에 결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그간 독자적인 활동은 물론 랑랑, 데이빗 가렛, 레이 첸 같은 음악가들과 협연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 왔는데, 지난 2014년에는 세계적 권위의 에코 클래식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앙상블로서의 입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20여 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콘트라베이스계의 슈퍼스타 모임이 되었다. 처음 4명으로 시작했던 앙상블의 멤버는 그 수가 늘어나 이제는 10명. 그저 머릿수만 늘린 것이 아니다. 마티아스 슈페르거, 쿠세비츠키, ARD 같은 콘트라베이스 국제 콩쿠르 우승자가 넘쳐난다. 이들 한 명, 한 명은 바시오나 아모로사 앙상블 활동은 물론, 독자적인 커리어 또한 이어나가고 있다. 멤버 중 한 명인 로만 파트콜로는 현재 안네 소피 무터 재단의 후원을 받는 인재이며, 한국 최고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성민제 또한 오래 전부터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3악장 (안네 소피 무터, 로만 파트콜로 外 연주)

 

쿠세비츠키 베이스 협주곡 1악장 (성민제, 배성준 연주)

 

그런데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대체 어떻게 이런 뛰어난 멤버들을 10명이나 모을 수 있었을까? 필자는 얄궂게도 콘트라베이스 독주자를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오늘날의 클래식 음악 시장을 생각해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바시오나 아모로사가 이러한 환경을 타파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이겠지만,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힘을 모을 필요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필자처럼 귀동냥으로 콘트라베이스의 한계를 듣던 사람에게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리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오는 5월 17일(금)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에서 개최되는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9년 만의 내한공연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저음의 매력

이번 공연에서 만날 수 있는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연주자는 총 4명. 로만 파트콜로, 류빈코 라지치, 얀 이르마섹, 그리고 성민제다. 그리고 특별히 피아니스트 릴리안 아코포바가 베이스 연주자들에게 화음을 보충해줄 예정이다.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멤버 한 명, 한 명이 콘트라베이스계의 슈퍼스타인 점은 잘 알겠지만, 도대체 공연은 어떻게 구성할까? 이에 대해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클래식의 대중화’와 ‘대중적으로 유명한 클래식 음악’ 사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답한다. 이미 유명한 선율을 콘트라베이스로 옮길 때에는 악기 고유의 매력을 보여줄 편곡 지점을 찾아내 작품과 악기를 동시에 살려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대부분 앙상블 멤버들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리스트 「사랑의 꿈」 (바시오나 아모로사 연주)

 

물론, 이런 유명 고전음악 메들리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마냥 고전음악의 유명 선율만을 연주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중의 호기심을 살 수 있는 곡들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앙상블 멤버인 기오르기 마코쉬빌리는 클래식 콘트라베이스는 물론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와 작곡까지 해내는 음악가다. 이처럼 멤버 각각의 독특한 경험은 연주뿐만 아니라 편곡과 작곡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바로 이렇게.

 

스테판 쉐퍼 「포커페이스」 (바시오나 아모로사 연주)

공연장에서 만나는 콘트라베이스는 무조건 옳다!

언제나 그랬듯이 바시오나 아모로사는 이번 내한 프로그램도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작품들로 채웠다. 멀게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리오소」와 니콜로 파가니니의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같은 고전음악부터 몬티의 「차르다시」, 디니쿠의 「키오카를리아」 같은 집시음악을 콘트라베이스 앙상블에 맞게 편곡하였고, 앙상블의 멤버인 마코쉬빌리가 작곡한 「Disco」와 「Tolero」 같이 바시오나 아모로사를 위해 특별히 쓴 작품도 연주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릴 때 마트에서 보던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은 프로그램이다.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내한공연 소식을 전하며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렇게 덧붙이려 한다. 그저 감상하는 것이 아닌, 공연장 바닥을 울리는 묵직한 저음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콘트라베이스 공연은 무조건 좋다고.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악기의 거대함, 스피커로 전달되지 않는 저음의 무게감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콘트라베이스 4대로 연주하는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은 대체 어떤 소리가 날까? 연주자들의 기량만 생각해봐도 분명 훌륭할 것이다. 바시오나 아모로사에는 더 이상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 속 주인공 같은 주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첼로를 위해 편곡된 몬티의 「차르다시」 (루카 술릭 연주)

 

디니쿠 「키오카를리아」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멤버 로만 파트콜로 연주)

글. 윤무진(음악칼럼니스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