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바이올린 탐구, 그 노정의 의미를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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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 로열 클래식 1 – 클라라 주미 강 & 김선욱

오는 9월 11일(토),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무대가 모처럼 세계적인 솔로이스트들의 공연으로 채워진다.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김선욱 콤비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을 연주하는 듀오 리사이틀! 두 사람은 지난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열 곡 전곡의 음반 녹음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기에 이번 공연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각별하다. 또한 이번 공연은 하릴없이 흘려보냈던 베토벤 기념 해의 의미를 돌아보고 되새기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인터뷰 (고양문화재단 ASGY TV ‘시그널 프렌즈’)

베토벤 기념 해의 연장

클래식 음악계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에게 지난 2020년은 다른 무엇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불안을 만연케 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음악계에도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당초 그 뜻깊은 해를 기념하기 위해 수많은 공연과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중 대다수가 취소되거나 보류되었다. 위대한 ‘음악의 성인’을 기리는 중요한 해가 그토록 허망하게 지나갈 줄이야…. 수많은 이들의 탄식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아쉬움과 깊은 아픔으로 메아리쳤다.

그러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누구이던가? 그저 기념 해에만 대접해주고 떠나보내면 그만인 여느 음악가가 아니라, 자주 만나게 되고 수시로 반추하고 음미하게 되는 필연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비록 축제의 불꽃은 채 타오르지도 못한 채 사그라들었지만, 그보다도 훨씬 뜨거우면서 꾸준한 불길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대개 ‘3대 장르’로 꼽히는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사중주를 먼저 거론하게 된다. 그에 비해 바이올린 소나타는 유명한 「봄 소나타」와 「크로이처 소나타」를 제외하면 다수 애호가들에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세계에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

베토벤의 주 무기는 역시 피아노였으나, 바이올린도 곧잘 다룰 줄 알았다. 어린 시절에는 정식으로 바이올린을 배웠고 고향 본의 오페라 극장에서 비올라 주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빈에서는 명 바이올리니스트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가 현악기 용법을 깊이 탐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걸작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마지막 곡을 제외하면 주로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었다. 그 작업을 통해서 베토벤은 바이올린 음악의 가능성을 탐구했고, 나아가 그 성과를 다른 장르들로 확대하여 불멸의 걸작들을 탄생시키는 단초로 활용했다. 아울러 그 열 곡이 발전해가는 노정에는 이전까지 소나타에서 ‘피아노의 리드나 서포트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솔로’였던 바이올린이 차츰 주도권을 획득하여 피아노와 대등하거나 능가하는 위상을 확보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주미 강과 김선욱, 자랑스러운 두 이름

이번 공연의 각별한 의의는 이처럼 중요한 작품들을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연주로 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주지하다시피 김선욱은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로 각광받고 있고, 역시 국제적 아티스트인 클라라 주미 강(Clara-Jumi Kang, 이하 ‘주미 강’)은 독일 국적이긴 하지만 한국인 음악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국내에서 공부한 적도 있다. 이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급 아티스트들이긴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있으니 잠시 두 사람의 이력과 근황을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주미 강은 독일과 미국, 한국에서 공부한 후 2009년 서울국제콩쿠르, 2010년 센다이 콩쿠르,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는 다섯 개의 특별상까지 휩쓸며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1년에 데카(Decca) 레이블에서 데뷔 음반 『모던 솔로』(Modern Solo)를 냈고, 2012년에는 동아일보에서 선정한 ‘한국을 빛낼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한편 대원음악상을 수상했다.

그저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면 될 상황 같았지만 주미 강은 자만하지 않고 보다 신중한 행보를 이어갔다. 2011년에서 2013년 사이 바쁜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 교수(Christoph Poppen, 1956~ )를 사사하며 자신의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가꾸었던 것. 그 결과는 솔로와 협연은 물론이고 실내악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레퍼토리에서 자신만의 길을 뚜렷이 밝히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출전은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다소 아쉬웠던 성적과는 별개로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고하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기돈 크레머, 발레리 게르기예프, 보리스 베레초프스키, 바딤 레핀 등 최정상의 아티스트들이 그녀의 깊이 있는 음악성과 유니크한 매력에 주목하여 러브콜을 보냈던 것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오랜 지기이자 단짝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손열음과의 호흡이 돋보였다. 두 여인의 성숙하고 아름다운 듀오 연주는 수많은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김선욱은 2006년 영국에서 열린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18세였던 김선욱은 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이자 최초의 아시아 출신 우승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결선에서 마크 엘더 경이 지휘한 할레 오케스트라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협연하여 평단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김선욱의 행보는 이후에도 비범했다. 국내외에서 세계적인 교향악단들과의 협연은 물론이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사이클,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사이클(바이올린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한 가이 브라운슈타인)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2015년에는 대원음악상 수상에 이어 악첸투스(Accentus)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어 음반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올 초에는 KBS교향악단과 함께 베토벤의 협주곡과 교향곡을 연주하면서 지휘자로도 데뷔하여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한층 확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베토벤과 브람스 등 독일 레퍼토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급 피아니스트로 각광받고 있으며, 후배인 조성진과 더불어 2000년대 이후 국제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끊임없는 정진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2019 예루살렘 실내악 페스티벌 실황)

고난의 시간 뒤에 찾아온 환상의 듀오

이 두 아티스트의 만남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국내 무대에서는 아직 낯선 모습이지만, 해외에서 두 사람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종종 듀오를 이루어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차원에서도 시너지를 일으킬 여지가 다분한 두 사람이기에 이번 공연에도 큰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혹시 궁금하다면 연초 유튜브에 올라온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2019년 예루살렘 실내악 페스티벌 실황) 협연을 통해 두 사람의 파트너십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작년에 진행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음반은 공연에 맞춰 발매될 예정이다.

이번 고양아람누리 공연에서 주미 강과 김선욱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열 곡 가운데 제3번과 제6번, 그리고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제9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전반부와 강력하고 치열한 후반부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프로그램이다. 1부에서는 주미 강의 다채롭고 아취(雅趣) 가득한 바이올린을 김선욱의 중후한 피아노가 배려 깊게 받쳐주는 모습이, 2부에서는 두 비르투오소가 불꽃 튀는 대결과 속 깊은 대화를 펼쳐 보일 모습이 기대된다.

끝으로 관전 포인트 한 가지 더. 두 사람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인한 시련을 톡톡히 체험한 바 있다. 김선욱은 예정된 리사이틀 스케줄이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취소됐고, 지휘 데뷔도 해를 넘겨서야 가능했다. 주미 강은 손열음과의 듀오 리사이틀 전국 투어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어 무관중 공연으로 전환해야 했다. 고난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던 연주자들이기에 이번 공연에서 베토벤의 음악에 담긴 의미를 더욱 심도 있게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이번 공연이 각별히 기대되는 진정한 이유이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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