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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예술가 열전 ⑥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아마데우스>(1984)

1985년 LA에서 열린 제57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인도로 가는 길>로 세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자르는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들고 ‘모차르트가 이번 음악상 후보에 함께 오르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얘기해 웃음과 박수를 받았다.

모차르트 말고, 살리에리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 1924~2009)의 말이 맞았다. 사실상 모차르트가 영화음악을 담당한 영화 한 편이 1984년 전 세계를 강타했고 200년 전 모차르트가 만든 경이로운 음악에 다시 한 번 매료된 사람들이 앞다투어 레코드를 샀으니 만일 모차르트가 자격 요건이 되어서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면 내로라하는 영화음악가들 모두 경쟁을 포기하고 기권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차르트가 영화음악을 담당했다는 그 영화는 바로 <아마데우스>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Levin Shaffer, 1926~2016)가 쓴 원작과 시나리오를 체코 출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1932~2018)이 연출하고 영국의 지휘자 네빌 매리너(Neville Marriner, 1924~2016)가 참여한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다. 흥행에 대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영화평론가들은 극찬을 쏟아냈으며 심지어 음악영화에 늘 냉소적이었던 뮤지션들과 음악평론가들에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평가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우 유효해서 1980년대 나왔던 영화들 아니, 영화사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되는 명작인 것은 분명한데 한 가지 분명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다.

분명 제목은 모차르트의 중간 이름 ‘아마데우스’이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모조리 모차르트의 마스터피스들인데 관객들은 물론 음악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한 음악가 ‘살리에리’라는 등장인물이 주인공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 가운데 모차르트

다시 조명 받게 된 비운의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는 18세기 말 유럽 음악의 중심 비엔나에서 장기간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악장을 지내며 37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이탈리아의 음악가였다. 당대에 살리에리는 꽤 유명해서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같은 ‘될성부른 떡잎’들이 그에게 음악 레슨을 받았다. 제자들 중에는 모차르트의 막내아들 프란츠 모차르트도 있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에 정착했을 때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중견 음악가였다.

모차르트가 비엔나에 온 지 10년째가 되던 35세 한창 나이에 돌연사하자 별 증거도 없는 ‘살리에리 독살설’이 당시에도 꽤 자자했다. 영화에서처럼 살리에리가 겪은 말년의 신경쇠약이 이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살리에리가 죽자마자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단편 희곡에서 이 내용을 다루며 루머는 그만 정설이 되어버린다.

피터 쉐퍼의 연극 <아마데우스>는 이런 루머와 창작극들을 조합하고 집대성해 살리에리를 질투심과 신에 대한 증오심에 눈이 먼 살인자로 그려냈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역설적으로 그간 완전 잊혔던 살리에리의 오페라들이 다시 조명 받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 가운데 살리에리

전 세계인이 공감한 ‘살리에리 증후군’

대중이 절세의 미남 미녀, 신동, 비범한 천재,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현상이지만, 역으로 그런 ‘잘난 놈’에게 부러움과 질시의 눈을 보내는 평범한 나의 모습을 주인공에게서 발견하게 만든 것은 <아마데우스>의 기발한 묘수였다.

대부분의 관객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을 천재 모차르트가 아닌 평범한 살리에리에게 투영해 영화를 보게 되고, 별수 없이 자신이 살면서 느꼈던 씁쓸한 좌절과 절망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살리에리가 평범하다는 것은 사실 착시 효과다. 전교 2등이자 은메달리스트였는데 ‘1등만 기억하는 치사한 세상’ 법칙이 작용하는 것)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비교에 익숙해서 나보다 뭐든 잘하는 사람의 존재를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우린 무수히 겪어 보지 않았는가. 그 극단적인 예를 <아마데우스>가 인류 역사상 가장 음악적으로 뛰어난 슈퍼스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던 운수 사나운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통해 고스란히 그려낸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가 들고 온 악보집을 여기저기 펼치며 경악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영화의 백미인데, 이 장면에 힘입었는지 살리에리를 연기한 F. 머레이 에이브러햄(F. Murray Abraham)은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Tom Hulce)를 제치고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만큼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이긴 것.

일러스트레이션. 권오섭

여전히 우리 주변엔 모차르트가…

우리는 수석, 1등, 1위, 금메달과 같은 타이틀을 실제로 거머쥐지는 못해도 일상생활에서 의외로 자주 거론하며 산다. 그러면서 세상 도움 안 되는 부러움과 열패감, 좌절과 자괴에 빠지곤 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늘 주변의 모차르트들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걸까?

천재 모차르트, 열등감의 살리에리, 원작자 피터 쉐퍼, 감독 밀로스 포먼, 심지어 모차르트를 피해 상을 받은 모리스 자르까지. 이제 모두 이 세상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 <아마데우스>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사랑하라, 나 자신을 사랑하라.”

글. 권오섭(영화 칼럼니스트)

‘영화 속 예술가 열전’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권오섭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내,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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