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거장과 함께 떠나는 러시아 음악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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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솔로이스츠 with 유리 바슈메트

수없이 무대에 올려지는 러시아의 대표적 레퍼토리,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굵직한 경력을 내세워 한국을 찾는 러시아인들의 다채로운 연주 가운데 옥석을 가려낸다는 것은 쉬운 듯 어려운 일이다. 매우 바람직하게도, 러시아 음악의 오랜 팬들은 소위 ‘이름값’과 ‘정상급의 실력’을 골고루 갖추고, 거기에 한국 애호가들과의 교감에도 적극적인 러시아 음악가들을 구별해내고 있다. 그리고 10월 1일(금)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 그들이 온다.

글이나 방송에서 쓰려고 해도 꺼리게 되는 것이 유행하는 줄임말, 혹은 뜻은 통하지만 너무 강한 표현이 담겨 있는 단어들이다. ‘진짜’ ‘정말로’ 라는 표현을 대신하고 있는 한 글자, ‘찐’ 이 자주 눈에 띈다. 한국인이라면 별 고민 없이 이 글자에 담긴 의미와 감정의 강도를 짐작하지만, 너무 자주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고민도 분명히 있다. 진정한 의미의 ‘찐’이 남발될까봐서다.

그 중 비올라 연주자 유리 바슈메트는 언제 들어도 늘 우리에게 넉넉한 믿음을 주는 존재다. 지휘자로, 교육자로도 활발한 68세의 거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에서 발견해낸 한국인 연주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찐’ 러시아 음악가다. 내한을 준비 중인 유리 바슈메트를 서면으로 인터뷰하였다. 이번 공연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기대를 드러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많은 공연을 했습니다. 멋진 공연장들이 있고, 아티스트에게 매우 세심하고 감성적인 관객들이 있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항상 즐겁죠. 이번 공연이 우리에게도, 공연장에 오시는 관객들에게도 굉장히 큰 영감의 순간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유리 바슈메트

의심할 바 없는 현존 최고의 비올리스트

러시아 로스토프 온 돈(Rostov-on-Don) 출신으로 18살부터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에서 바딤 보리소프스키(Vadim Borisovsky, 1900~1972)와 표도르 드루지닌(Fyodor Druzhinin, 1932~2007) 등 당대 최고의 스승을 만나 급성장한 바슈메트의 스토리는 마치 영화를 보듯 극적이다.

학창시절부터 비올라뿐 아니라 다방면의 음악에 무한한 관심을 보였던 그는 한때 록 밴드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며, 기존의 비올라 레퍼토리를 포함해 고정화된 해석의 틀을 깨고 ‘중음을 담당하는 앙상블 악기’라는 비올라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1989년 런던 위그모어 홀 독주회에서 ‘의심할 바 없는 현존 최고의 비올리스트’라는 극찬을 받았고 라 스칼라, 콘서트헤보 등에서 독주회를 연 최초의 비올리스트가 되기도 했지만, 바슈메트를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만든 것은 그를 위해 만들어진 여러 창작곡들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용감한 개척자의 이미지 덕분이다.

“모든 곡들이 내겐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비올라를 처음 시작할 때는 비올라 레퍼토리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비올라 작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때문에 저를 위해 작곡된 비올라 협주곡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반겼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쓰인 모든 곡을 연주해보라. 그 중 몇몇은 좋은 음악으로 밝혀질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분명히 걸작이 될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알프레드 슈니트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보리스 차이콥스키 기야 칸첼리의 작품은 진정한 걸작입니다. 그 중 몇 곡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비올리스트들에게도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즐겁습니다.”

유리 바슈메트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모스크바 솔로이스츠가 유일무이한 이유

이번 고양 공연에서도 그는 슈니트케의 1987년 작인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를 연주한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 함께다. 1986년 처음 만들어져 1992년 재창단한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그들의 이름대로 러시아 음악의 중심 이벤트가 일어나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젊은 음악도들로 구성된 올스타 악단으로 처음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 후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과 공연장을 휩쓰는 놀라운 활약과 함께 탁월한 기획력을 앞세운 음반들로도 환영받으며 현재까지 그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다.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 함께 연주할 때, 저는 제가 다른 연주자들을 이끄는 ‘또 한 사람의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물론 지휘자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제가 비올라를 들고 앙상블과 함께 연주를 하면 그들은 음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듣게 됩니다. 우리 악단은 현악 앙상블이라서 소리의 출현, 활의 분배, 현의 결합이 매우 섬세하죠. 제가 지휘자이자 연주자라는 점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를 특별하고 유일무이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입니다.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에는 매우 특별한, 통일된 소리가 있습니다.”

“레퍼토리에 있어서도 완전히 잡식성이죠. 컨템퍼러리 음악을 많이 연주하지만 동시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곡을 하루 저녁에 모두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슈베르트, 브람스 같은 유명한 고전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동시에 우리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작품들도 연주하니까요. 중요한 음악적 사건들은 각각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순간에 일어나는데, 연주의 짜릿한 비밀은 공연장에서 확인하시길.”

그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2년에는 러시아 국립 노바야 심포니의 음악감독이 되어 본격적인 지휘자로서의 활동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솔리스트로, 앙상블의 리더로, 대편성 관현악의 지휘자로 무대에서 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바슈메트가 완벽에 가까운 멀티 음악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물론 실내악단과 교향악단은 차이가 있습니다. 음악도 다르고, 연주자의 수도 다르고, 그 외에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두 단체 모두 음악의 가장 ‘깊은’ 곳을 함께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공통된 음악적 속성은 단원들과 내가 함께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열쇠죠. 때로는 음악 외적인 기획이나 행정까지도 다루어야 하지만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데 관심이 큰 사람입니다. 저의 이름을 딴 축제를 비롯해 그곳의 새로운 내용들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워지는지 늘 확인하죠.”

유리 바슈메트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감정과 사색이 가득한 러시아 음악의 세계

무대에서 온갖 상황을 겪으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 온 바슈메트 같은 대가에게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은 적지 않은 시련이었을 듯하다. 뜻하지 않은 심각한 장벽 앞에 가로 놓인 음악가들의 방황을, 그는 뚝심 있는 러시아인답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들고 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잠시 멈추는 것도 성찰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아이디어의 시기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죠. 인생에 있어서도 낯선 어떤 무대를 앞에 두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거장, 바슈메트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의 무대는 이번에도 낯설고도 익숙한, 친근하면서도 신선한 러시아 음악의 정수를 들려줄 예정이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 사운드에서 느끼기 힘든, 현악기 주자들이 빚어내는 실내 오케스트라의 독특한 묘미는 디테일부터 대륙적인 웅장함까지 그들이 빚어내는 음표마다 묻어 있다. 바슈메트가 청중들에게 건네는 러시아 음악의 매력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하다.

“제게 러시아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면 멜로디의 결합, 즉 우리만이 지닌 독특한 체계를 지닌 영혼의 세계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걸작들은 어느 곡이나 감정과 사색적 의미로 가득 차 있죠. 이런 요소들의 조합이 놀라운 창조적 결과로 이어져 전 세계 어느 공연장에서나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관객들 중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with 유리 바슈메트
프로그램

슈니트케_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삼중주 소나타
(편곡 : 유리 바슈메트)

쇼스타코비치_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
(협연 : 피아니스트 조재혁)

차이콥스키_ 현악 육중주 ‘플로렌스의 추억’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

고양문화재단에서 알려드립니다

이 포스트에 소개된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 혹은 전부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포스트 제작 당시와 달리) 일정이 변경되었을 수 있으며, 추후에도 진행 여부 및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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