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나아간다 바람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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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극 <돛닻>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10월 29일(금)부터 31일(일)까지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움직임극 <돛닻>이 공연된다. 무용수 이선태의 인생을 거슬러 오르는 한 편의 수필 같은 작품이다.

배가 나아가려면, 돛을 펼쳐야 한다. 돛이 바람을 품으면, 배는 바람길을 따라 나아간다. 배가 떠밀리지 않으려면, 닻을 내려야 한다. 닻이 땅에 박히면, 배는 단단히 고정된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바람을 읽을 줄 알아야 할 터. 바람은 곧 길이다.

이선태를 설명하는 ‘대중’과 ‘예술’의 키워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의 <돛닻>을 설명하려면 이선태에 대한 소개가 우선이다. 그의 여러 이력 중,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댄싱9>일 것이나 이에 대한 소개는 뒤로 미루기로 한다. 그의 인생 여정을 거슬러 오르는 게 작품의 의도를 따르는 일일 것이다. 작품 내용과 무관하더라도 말이다.

이선태는 현재 ‘대중의 예술화’를 목표로 2014년 창단한 현대무용단 STL Art Project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또한 ‘예술의 대중화’를 기치로 출범한 현대무용협동조합(COOP_CODA)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짐작할 수 있듯, ‘예술’과 ‘대중’은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그 시너지가 폭발적으로 터진 건, <댄싱9>일 터. 그는 2013년과 2015년, 엠넷(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에 출연했다. 2013년 MVP 결정전에서는 심사위원 평가 400점 만점에 399점을 받아 최고점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의 인지도도, 현대무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움직임극 <돛닻>

인생 여정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는 조력자, 김설진

여기서 잠깐, 이번 <돛닻>에 함께 출연하는 김설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돛닻>은 이선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엮은 수필 같은 작품이지만, 이야기를 함께 풀어내는 조력자 역으로 김설진이 등장한다. 최근 드라마 <빈센조>와 <스위트홈> 등을 통해 이제는 연기자로 익숙하지만, 김설진이 대중에게 가장 먼저 각인된 건 <댄싱9>을 통해서였다.

그는 2014년 <댄싱9>에 출연하며 ‘갓(God)설진’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현대무용가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댄싱9> 출연을 따지면 김설진은 이선태의 후배지만,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선배다. 이번 <돛닻>에서 그는 학교 후배 이선태를 위해 작은 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타고난 춤꾼이 펼치는 ‘피지컬시어터’의 가능성

다시 이선태의 이야기로 회항하자. <댄싱9>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안겨주었지만, 그전에 이미 그는 LDP무용단에서 활동하며 이 바닥에서는 꽤 알려진 무용수였다. 사족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한 LDP무용단은 현대무용단체 중 거의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며 무용계의 아이돌 군단으로 불렸다.

<댄싱9>에서의 활약과 LDP무용단의 활동 등 ‘무용수’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가, 중학교 시절엔 스트리트 댄스를 추었던 ‘춤꾼’이라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돛닻>은 이런 이선태의 개인사를 역으로 거슬러 오르며 들려준다. 아니 보여준다. 이야기를 재편집한 이는 간다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민준호다. 간다는 고양아람누리 상주단체로 최근 <나와 할아버지> <템플> <뜨거운 여름> 등을 새라새극장에서 선보인 바 있는데, 민준호는 이들 작품을 쓰고 연출한 장본인이다.

여담으로 이선태, 김설진과는 지난해 우란문화재단에서 트라이아웃으로 공연되었던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를 통해 합을 맞춘 바 있다.

이 작품을 비롯, 민준호 연출은 최근 몸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을 창작 중이다. 2019년 새라새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템플>도 그중 하나로, 이 작품을 통해 피지컬시어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돛닻>을 통해 다시 한 번 몸을 통한 대화를 시도한다.

움직임극 <돛닻>

미풍이 일으킨 작지만 큰 결과

다시 바람을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태풍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아주 큰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은, 아니 인생의 대부분은 소소한 일상이 쌓인 결과물일 것이다. 미풍처럼 사소한 사건들이 어쩌면 인생을 결정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돛닻>은 태풍 같은 큰 바람보다는, 이선태의 인생에 불었던 잔잔한 미풍으로 꾸며진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 따라 나아간다. 바람은 길이다.

하고픈 건, 무대에서만 가능한 것

<돛닻> 연출가 민준호와의 일문일답

 

지난해 고양문화재단과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가 공동제작한 움직임극 <돛닻>. 안타깝게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관객과 만나지 못했던 <돛닻>이 2021년 상주단체 프로그램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돛닻>은 무용가 이선태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움직임극으로, 그가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이는 작품이다. 2016년 고양문화재단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5년간 고양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간다’의 민준호 연출을 전화로 만났다.

비록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돛닻>은 지난해 초연된 작품입니다. 작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최대한 1인극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이)선태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이선태의 1인극이 되는 게 맞는다고 보고, 사실 작년에도 선태에 집중한 1인극으로 만들려 했어요. 하지만 대화 장면 등 상대역이 필요한 장면이 있었고, 또 무대 전환을 도울 사람도 있어야 해서 2인극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그런 부분마저 선태가 혼자 해결할 수 있게 연출해서 최대한 1인극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작년에 우란문화재단에서 트라이아웃 공연된 무용극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에서는 김설진 씨까지 세 명이 호흡을 맞춘 바 있죠. 그때 “뮤지컬에는 뮤지컬 넘버가 있듯이, 움직임 넘버가 있는 극을 만들어보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가 뮤지컬에 가깝다면, <돛닻>은 수필에 가까워요. 선태 이야기를 녹음해서 재구성한 거라 진짜 수필이기도 하죠. <돛닻>은 그가 현재 왜,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지를 추적하는, 인생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 위해 돛을 올리고 닻을 내린 시점과 지점을 찾아가는 이야기죠. 거꾸로, 거꾸로. 그러는 과정에서 어떤 춤을 추었는지 보여주고, 그런 춤을 추게 된 계기와 춤을 만들어가는 방법들이 구체화되어 보일 예정입니다. 일종의 무용 탐구 같은 작품이죠. 이선태라는 인간을 기점으로 자기 탐구를 해가는 수필 같은 작품.

 

<돛닻> 연출가 민준호

 

최근 들어 ‘간다’에서 움직임극을 자주 선보이는 느낌입니다.
처음 ‘간다’를 창단했을 때 취지는 남들과 다른 공연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점 말로 하는 작품들이 늘었죠. 그 절정이 <신인류의 백분토론>이었습니다. 거의 말의 서커스 수준이었죠. 그런 작업을 하면서 점점 내 색깔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백분토론>을 마지막으로 말의 향연으로 이뤄진 작품은 졸업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동료들도 생계 졸업을 했고. 그때부터 평소 관심을 가졌던 극무용, 움직임극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품들이 최근 연이어 선보이게 된 셈이죠. (<돛닻> <템플>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아직 발표하지 못한 작품으로 <어린 왕자>가 남아 있죠. 앞으로도 움직임극을 더 연출할 생각입니다.

텍스트 중심의 작품 연출도 잘하는데, 굳이 움직임극에 매진하려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대본이 중요한 연극은 다른 분들이 잘하고 계세요. 반면, 움직임극은 다른 극단에서 잘 다루지 않는 장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중에서도 독특한 걸 하고 싶습니다. 무대에서만 가능한. 보통 연극을 보면, 거의 다 리얼리즘 연극 같습니다. 리얼리즘 연극이 전부가 아닌데,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 연극이 점점 더 빨리 사장될 것 같아요. 원래 무대에서만 가능한 무대의 맛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마추어 같더라도.

언제부터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나요?
창단작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도 움직임이 많은 극이었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2004년에 무용원 안무과(창작과)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움직임이 중요하고, 움직임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극)연기만 하는 건 좁게 느껴져요. 연기를 넘어 작품이 다르게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은 <돛닻>을 잘 올려서 극단명처럼 배달을 많이 다니고 싶습니다. 아까 언급한 <어린 왕자>도 잘 만들어서 내년에는 발표하길 희망하고요. 그렇다고 움직임극만 준비하는 건 아니에요. 기존의 작품 중 말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도 내년에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다른 분야(영화 등)에서 활동하는 ‘간다’ 출신 배우들을 무대에서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사진. 노승환

고양문화재단에서 알려드립니다

이 포스트에 소개된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 혹은 전부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포스트 제작 당시와 달리) 일정이 변경되었을 수 있으며, 추후에도 진행 여부 및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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