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경계에 놓인 그가 온전히 인정받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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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이 돌아왔다.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올해로 13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이 작품은 두터운 팬덤을 자랑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헤드윅>에 열광하는 ‘헤드헤즈’들이 작품에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헤드윅>에 열광하는지 11월 26일(금)부터 28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도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대극장 버전으로 더욱 화려해진 뮤지컬 <헤드윅>

30분 남짓의 즉흥 쇼에서 출발한 뮤지컬

친근하게 말 걸고 거침없이 욕하며 위악적인 분노를 쿨하게 뱉어내는 주인공 헤드윅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캐릭터와도 구별되는 독창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존재다. 그(그녀)의 원맨쇼는 너무나도 통쾌하고 웃기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은 쇼에 20여 년 동안 열광하며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뮤지컬 <헤드윅>은 1994년 미국 맨해튼의 클럽 돈 힐즈에서 시작했다.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과 돈 힐즈의 음악감독이자 작곡가였던 스티븐 트래스크(Stephen Trask)는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가 매우 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모노 콘서트 같은 드랙쇼(drag show)가 바로 <헤드윅>의 출발이다.

처음 돈 힐즈에서의 공연은 헤드윅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즉흥 쇼 형식이었다. 플라톤의 <향연>을 바탕으로 만든 「사랑의 기원」(The Origin Of Love)으로 시작해 모든 것을 벗어던진 헤드윅이 자신을 찾고 「미드나잇 라디오」(Midnight Radio)를 부른다는 설정은 같았으나 여러모로 허술한 30분 남짓의 쇼였다. 하지만 공연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살이 붙었고, 결국 지금의 공연으로 자리를 잡았다.

독특한 스타일의 이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좀 더 큰 무대가 필요했다. 창작자들은 일반적인 공연장 대신 방치된 호텔 리버뷰의 그랜드볼룸을 선택했다. 호텔 리버뷰는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가 묵었던 곳으로 세상에 위악적인 포즈를 취하는 <헤드윅>이 공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헤드윅이 관객들에게 호텔 리버뷰와 타이타닉 호에 관해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 그 경계의 굴레

<헤드윅>의 기본 이야기 구조는 헤드윅이 음악적 재능을 물려준 스타, 토미 노시스의 안티 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헤드윅 콘서트 장의 문을 열면 허드슨 강 건너 대형 콘서트 장에서 부르는 토미 노시스의 콘서트 소리가 들린다.

헤드윅은, 동독에 살던 꼬마 한셀이 어쩌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살덩이가 남겨진 헤드윅이 되어 토미 노시스를 따라다니며 콘서트를 열게 됐는지 들려준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에서 도망쳐 엄마와 살아가는 동독에 살아가는 꼬마 한셀. 팝송을 즐겨 부르고 일광욕을 즐기는 어린 소년에게 곰만 한 미군 루터가 나타나 달콤한 테디 베어로 유혹하며 젤리보다 더 달콤한 미국행을 제안한다.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 언제든 달콤한 테디 베어를 맛보기 위해 한셀은 다리 사이의 덜렁이는 것을 없애야 했다.

미국행을 위해 불법 수술을 받던 한셀은 수술 실패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1인치 살덩이를 가진 존재가 된다. 뮤지컬에서 루터의 달콤한 유혹은 흥겨운 컨트리풍의 노래 「슈가 대디」(Sugar Daddy)로, 성전환 수술의 실패담은 분노를 가득 담은 하드록 스타일의 「앵그리 인치」(The Angry Inch)로 불려진다.

엄마의 여권을 위조해 헤드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는 미국으로 건너오는 데 성공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루터에게 버림받는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자신의 반쪽이 자유주의 미국에 사는 루터라고 생각했지만 버려지고 만 것이다. 이후 또 다른 자신의 반쪽이라 생각한 토미를 만나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물려주지만, 헤드윅에게 남겨진 살덩이를 확인한 토미는 그를 떠나가 버린다.

헤드윅은 남자와 여자의 경계에서 살아가면서 버림받고 상처받은 이야기를 기괴한 농담과 자학적인 유머, 때로는 가학적인 분노를 섞어 들려준다. 그의 통통 튀는 발언이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깊은 슬픔을 근저에 둔 이야기는 무거운 정조를 띤다.

왼쪽부터 2021 뮤지컬 <헤드윅>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오만석, 고은성, 이규형

그 누구도 아닌 온전한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은 헤드윅의 원맨쇼이지만 토미 노시스 이외에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마치 헤드윅의 데칼코마니 같은 인물인 헤드윅의 법적 남편, 이츠학이다. 이츠학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로커로 드랙퀸 가수였다. 헤드윅은 그를 크로아티아에서 탈출시켜주는 대신 다시는 여장을 하지 못하게 한다. 헤드윅이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듯, 이츠학에게 똑같은 형벌을 내린다.

그러던 헤드윅은 토미 노시스의 한 마디에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굴레에서 벗어난다. 토미는 리프라이즈되는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에서 헤드윅에 대해 “신이 계획한 모든 남자와 여자 그 어떤 존재보다 완벽한 존재”라고 노래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느 쪽에서 속하지 못했던 헤드윅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받아들인 토미의 말은 그를 자유롭게 했다.

토미의 말에 자신을 찢겨진 시체라고 노래하던 헤드윅은 가슴 굴곡을 어색하게 만들어주던 토마토를 짖이겨 버리고, 짙은 눈 화장을 뭉개고, 샛노란 가발을 벗어던진 채 그 누구도 아닌 온전한 헤드윅 자신으로 돌아간다.

뮤지컬 <헤드윅>이 20여 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위악적인 포즈와 스타일, 유쾌하면서도 자조적인 농담, 그리고 휘발하고픈 듯 외쳐대던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불어 ‘세상의 경계에 놓인 그가 온전히 인정받는 이야기’에 관객들이 깊은 공감을 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 동과 서, 어른과 아이 구분 짓기 좋아하고 정해진 세상에 편입되기를 강요하는

세계에 냉소와 함께 뻔뻔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그에게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뉴 메이크업 버전으로 만나는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은 2014년 브로드웨이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욱 화려하게 돌아왔다. 이번 고양아람누리 공연은 대극장으로 옮긴 뉴 메이크업 버전으로, 국내에서는 2016년부터 이 버전으로 공연하고 있다. LED 영상과 화려한 의상으로 바뀌고 극 중 공연 장소도 허드슨강가의 낡은 공연장이 아니라 뉴욕 타임스퀘어 중심의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헤드윅이 객석에 난입해 카워시(Car Wash)를 벌이는 등의 관객과의 퍼포먼스는 사라졌지만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소중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헤드윅의 정신만큼은 변함이 없다.

글. 박병성(공연칼럼리스트)
사진 제공. 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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