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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만리장성.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로 일컬어지는 이 건축물을 볼 때면 중국이라는 나라의 국토, 역사, 인구의 규모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황하(黃河)를 시작으로 수천 년간 다양한 철학과 사상을 탄생시키고 발전시켜온 만큼 중국의 문화예술에는 인문학적 배경이 짙게 깔려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이자 세계 1위의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대국, 그리고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나라,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또한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한자 문화권의 종주국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아름답고 유려한 동양 고전 문학의 정수를 꽃피워 왔다.

히말라야 산맥과 몽골의 사막, 티베트 고원을 아우르는 광대한 대륙과 유구한 수천 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수많은 신화와 전설, 영웅호걸의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삼국지>(三國志) <수호지>(水湖志) <서유기>(西遊記) <초한지>(楚漢志) 등 고전소설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고전으로 사랑받으며 다양한 예술 작품들의 영감이 되었고, <논어>(論語) <맹자>(孟子) <사기>(史記) <춘추>(春秋) 등 유교경전과 역사서들 또한 동양 철학과 인문학적 사유의 근간이 되어 왔다.

‘인의’(仁義)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중국 문화에서 ‘보은’(報恩)과 ‘복수’(復讐)는 매우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고대 역사서로부터 민담과 설화, 무협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의인이나 목숨을 걸고서 끝까지 원수를 응징하는 인물을 빈번하게 만날 수 있다. 원나라 시대의 희곡작가 기군상이 쓴 잡극(雜劇) <조씨고아>(趙氏孤兒) 역시 이러한 중국식 은원(恩怨) 사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초로 유럽에 소개된 중국의 희곡

원 잡극은 원나라의 수도 대도(大都, 지금의 북경)를 중심으로 유행한 연극 양식으로, 중국 고전 극문학 중에서도 특히 문학성과 공연성이 뛰어난 장르로 손꼽힌다. 특히 주인공의 노래가 극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 ‘듣는 연극’의 정수이자, 동양적 오페라의 효시로 불리기도 한다.

기군상의 <조씨고아>는 이러한 원 잡극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사기>에 나오는 춘추시대 진(晉)나라 때의 간신 도안고와 충신 조순 집안 사이에 일어난 피 비린내 나는 비극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치밀하게 짜인 구성과 인물들의 영웅적 행위, 그리고 극 전반을 이루는 비장미 덕분에 널리 사랑받고 있는 작품으로, 일찍이 중국의 희곡 연구가 왕국유는 이 작품을 가리켜 “세계의 대 비극에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또한 <조씨고아>는 19세기 이전 유럽에 영향을 준 중국 최초의 희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731년 중국에 파견되었던 프랑스의 한 신부에 의해 번역되어 프랑스에 전해졌다. 유럽 전역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이후 여러 나라에서 번역 및 개작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수많은 개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볼테르의 <중국 고아>(L’Orphelin de la Chine, 1753년 출판)인데, 원작 이야기를 칭기즈칸 정복기의 혼란한 중국 황실로 옮긴 이 작품은 당대 프랑스 사회 전반에 걸쳐 중국 문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18세기 프랑스 희곡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아니세 샤를 가브리엘 르모니에(Lemonnier, 1743~1824)가 1812년에 그린 「마담 지오핀의 살롱에서 볼테르의 작품 <중국 고아> 읽기」.
그림 속 흉상이 바로 볼테르이다. 볼테르의 <중국 고아>는 1755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의 공연이 흥행한 이후, 18세기 내내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 값으로 이루어진 복수

<조씨고아>의 초반부는 피의 복수가 시작된 배경, 즉 조순 집안이 망하고 그 와중에 ‘조씨 고아’가 살아남게 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간신 도안고는 자신의 힘과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자신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라이벌 조순을 모함하고 그의 일족 300명을 직접 몰살했으며, 이제 막 태어난 조순의 손자, 조무마저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일찍이 조씨 집안의 은혜를 입었던 이들의 의로운 선택과 희생 덕분에 조무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인 조무가 어떻게 이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주체가 되느냐, 즉 이 복수가 무엇을 통해 만들어지느냐 하는 지점이다. 도안고가 조씨 일가를 멸족시키는 피의 광풍 한가운데, 조씨 집안의 유일한 핏줄을 살리기 위한 많은 이들의 희생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갓 낳은 조무를 자기 집안의 식객이었던 떠돌이 의사 정영에게 맡기고 죽은 공주(조무의 모친은 선왕의 누이이다), 의리를 위해 정영과 조무를 놓아주고 자결한 한궐, 도안고의 눈을 속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공손저구, 조무 대신 희생된 정영의 친아들 등 수많은 인물들이 은혜를 갚거나 정의를 위해, 혹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 이후에 남은 것은 얼떨결에 이 수많은 희생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촌부 정영과 그 희생의 대가인 ‘조씨 고아’뿐이다. 즉, 조무는 강보에 싸여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자신의 목숨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여러 인물들의 목숨 값을 빚지게 되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진실의 폭로와 피맺힌 복수, 동양의 햄릿

극의 후반부는 당연히, 그 수많은 희생을 딛고 살아남은 ‘조씨 고아’의 각성과 피맺힌 복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찍이 <조씨고아>는 서양에 소개되면서 “동양의 햄릿”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죽은 아버지(가족들)의 원한을 갚는 아들의 복수가 주된 스토리라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장성한 조무를 앉혀 두고 정영이 그의 집안의 몰락에 얽힌 사연을 소상히 들려주면서 가문의 복수를 다짐시키는 부분은 마치 <햄릿>에서 유령이 햄릿에게 나타나 진실을 폭로하고 복수를 다짐시키는 장면과 상당히 유사한 인상을 준다.

사실 정영은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소박하게 은혜를 갚으려다가 얼떨결에 ‘조씨 고아’를 떠안게 된 평범한 촌부다. 하지만 그 아이를 위해 차례차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의인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희생의 무게를 짊어지면서, 결국 필사적으로 이 아이를 살리게 된다. 그 과정에 친아들마저 희생시킨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조씨 고아’를 키워서 그 수많은 이들의 원한을 갚는 것뿐이다.

원수 도안고 밑에서 조무를 키우면서, 정영은 오로지 복수의 날을 기다리며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장성한 조무에게 그간의 사연을 들려주며 복수를 종용하고, 조무가 그 말을 믿지 않자 자신의 팔까지 자르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결국 조무는 정영의 말에 감복하고 도안고에게 칼을 겨눔으로써 가문의 복수를 완성한다.

정영

그 조씨고아는 이제 스무 살로 장성했건만,

부모를 위해 원수도 갚지 못했으니 말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시를 읊는다)

 

그는 당당한 칠 척 거구에 늠름한 용모로,

문무를 익혔건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마차 탄 할아비는 어디로 가셨는가?

 

집안 일족이 모조리 주륙당했고

냉궁의 어미는 대들보에 목을 맸으며

친아비도 형장에서 칼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건만,

여태껏 원한도 갚지 못하고 있으니

그게 어디 천하의 대장부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기군상, <조씨고아>, 정유선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복수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정체성의 질문

결국 도안고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조무는 자신의 이름으로 조씨 가문을 복권시켰으며, 정영 역시 의인으로서 후한 포상을 받는다. 권선징악적 관점으로 보면 명백한 선의 승리이자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다인가? 조씨 집안의 피맺힌 원한은 풀어지고 복수는 성공했지만,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조씨고아>는 현대에 와서도 연극,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와 새로운 관점으로 여러 번 재창조되었는데, 현대의 작가와 연출가들은 이 작품의 위대한 복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복수를 둘러싼 여러 논점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중국의 티엔친신(田沁鑫) 연출이 극단 미추의 배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조씨고아>는 아예 원전을 해체하여, 이 작품을 복수극이 아니라 ‘조씨 고아’ 조무가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조무에게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정영의 아들로 위장된 이름인 ‘정발’과 도안고의 양자로 자라면서 받은 이름인 ‘도성’, 그리고 조씨 가문의 마지막 후예로서의 이름인 ‘조무’.

세 개의 이름만큼이나 그의 정체성 역시 혼란스럽다. 친아버지인 줄 알고 있던 정영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타인이고, 존경하는 양아버지였던 도안고는 부모의 철천지원수이며, 자신의 친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죽은 사람이다. 과연 조무는 이 중 어떤 이름을 택하고 어떤 아버지의 편에 설 것인가. 연출가 티엔친신은 ‘조씨 고아’의 이야기를 원작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그는 이 작품을 ‘조씨 고아’의 통쾌한 복수 이야기가 아니라, 분열된 자아들 속에서 고민하던 그가 결국 복수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것이다.

복수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한편, 고선웅이 각색, 연출을 맡아 2015년 초연했던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조씨 고아’가 아니라 그를 맡아 키워낸 정영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연스레 전체 이야기 역시 ‘부친 살해’나 ‘정체성 찾기’가 아니라 ‘보은’과 ‘복수’라는 테마로 모아지면서, 특히 ‘복수’가 갖는 복잡 미묘한 의미의 결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난 뒤, 마지막에 등장한 왕은 도안고와 그의 집안에 엄벌을 내리고, 조무와 정영에게 큰 상을 내린다. 하지만 왕에게 도안고의 가문 역시 몰살할 것이냐고 묻는 정영의 목소리에는 승리자의 기쁨이 아니라 착잡한 번뇌가 서려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복수였으나, 그 끝에 남은 것은 공허한 허무와 또 다른 피를 불렀다는 자괴감뿐인 것이다.

복수를 완성한 뒤 무대 위의 정영이 자신의 환영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인물 – ‘조씨 고아’의 생부와 생모, 한궐과 공손저구,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자신의 부인(원작에는 없지만 고선웅이 각색 과정에 만들어낸 인물) 등등 – 역시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처연한 시선으로 정영을 바라볼 뿐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빈 무대에 남은 나비 하나와 <장자>를 연상시키는 시 구절은 공허함을 증폭시키며 작품의 테마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고선웅 특유의 유머러스한 위트와 밀도 있는 정서, 여기에 마지막의 여운이 더해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초연 당시 수많은 연극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16년에는 원작 <조씨고아>의 나라인 중국 국가화극원에 초청되어 신선한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립극단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2018년 공연 중 한 장면. 정영(왼쪽)이 장성한 ‘조씨 고아’ 조무에게 그간의 사연을 알려주기 위해
그림 족자를 펼친다. 조씨 집안에 불어 닥친 피 비린내 나는 비극, 그리고 그 속에서 갓 태어난 조무를 살리기 위해 희생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다.
고선웅이 각색·연출하여 2015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극찬을 받았고, 2016년에는 원작의 나라인 중국에 초청받기도 했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글. 김주연(연극칼럼니스트)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월간 <객석>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 시대의 극작가』(공저)를 출간했다. 연극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연극 칼럼니스트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작으로 읽는 세계연극’ 시리즈는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국가별로 한 편씩 골라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가 희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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