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심술이라는 타인을 향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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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독심의 술사>
김진수 × 이해제 인터뷰

바야흐로 ‘불신’과 ‘의심’의 시대. 하지만, 이 ‘못 믿겠는’ 역사도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여기, 매의 눈으로 파리의 마음까지 읽어낸다는 신묘한 독심술사, 그런 그에게 자기 아내의 마음을 읽어달라고 의뢰하는 의심병 환자, 그리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팜 파탈’의 아내까지 엉뚱하면서도 재기발랄한 3인조가 1970년대로부터 우리를 찾아온다. 12월 24일(화)부터 28일(토)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독심의 술사> 이야기다. 마음을 숨긴 자와 그 마음을 알고 싶은 자의 밀고 당기기 한 판을 앞두고, 이 판을 벌인 연출가 이해제와 이 판을 뒤흔드는 배우 김진수를 인터뷰했다. [편집자주]

왼쪽부터 연극 <독심의 술사> 연출가 이해제, 배우 김진수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연극 <독심의 술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이해제 사실 10년 전 3분의 1을 써놨던 대본이었다.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이 없으니까 그 상태로 묵혀 있었는데, 올해 기회가 찾아왔다. 제일 먼저 (김)진수 형님을 만났다.

왜 제일 먼저 김진수를 찾았나.
이해제 형님하고는 2016년에 연극 <톡톡>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형님이지만 또래라 편하다. ‘웃음’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고, 배우들과의 앙상블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는다. 사실 우리 나이가 위로는 선생님들 계시고 아래로는 후배들이 있어서 위아래로 다 어렵다. 70년대생들이 눈치 보는 낀 세대인 것 같아.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니고.
김진수 후배들이 더 어렵지.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김진수 이해제 연출가의 장점은 소동극을 잘 한다는 거다. 나도 <너와 함께라면>이나 <톡톡> 같은 소동극을 많이 해본 편인데, 세 명으로 소동극을 꾸려간다는 것이 독특했다. 그림이 그려지는 대본이기도 했고, 반전도 있어서 만들면 재밌겠다 싶었다.

작품의 독특한 지점 중 하나가 ‘독심술사’라는 직업이다.
이해제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게 사실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 때문에 눈치를 본다는 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니까. ‘서로의 마음이 오픈되어 있다면 살기 편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독심술사를 선택했지만, 현실로 가져와 보니 판타지가 생기지 않더라. 신문 귀퉁이에나 ‘누가 그랬다더라’ 정도에 머무를 것 같아서 배경을 70년대로 했다. 나는 과거를 항상 판타지로 보는 편이다. 지나온 것, 사라진 것들. 코스튬 자체도 지금은 안 입는 옷들이니까 새롭게 보이기도 했고.

독심술사라는 인물이 낯설지는 않았나.
김진수 솔직히 (독심술사인 나자광 役 대신) 장무안 役이 더 하고 싶었다. (웃음) 전사도 있고 감정의 폭도 넓어서 배우로서 더 보여줄 게 많을 것 같았다. 나자광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자 같은 느낌도 있으니까. 근데 이해제 연출이 나자광 시즌제로 갈 거라고 나를 꼬셨다. 하하하하.
이해제 나자광을 좋아하는 이유가, 허당기 있어 보이는 이 사람이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점 때문이다. (진수) 형님이 무안 役을 해도 되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지로도 나자광 役에 잘 어울린다.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어땠나.
김진수 나자광이 어떤 부분에서는 셜록 홈즈 같은 느낌이 있다. 셜록도 여러 배우가 연기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보다는 위트 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을 더 좋아한다. 나자광도 그렇게 접근하고 싶었다. 스스로 설득하고 이해하는 과정들이 있었는데, 작품 자체가 코미디이기도 하니까 ‘이럴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갖고 더 편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딱딱하지 않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하게 눌러주는 인물이 되길 바랐다.

연극을 보다보면 독심술이라는 게 결국은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인가.
김진수 정확히 말하면, 듣는 편이라기보다는 내 얘기를 잘 못한다. 듣다 보니까 그들이 왜 아파하고 왜 고민하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지고 그걸 알아보는 게 좋아졌다. 특히 연기하는 친구들 중에서 심적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에게 조언도 해주고 싶고,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서 몇 년 전부터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서 오히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

연극 <독심의 술사> 가운데 한 장면

이 시대 희극의 술사들

두 사람 모두 희극으로 각자의 영역을 만들었는데, 선호하는 코미디가 있나.
김진수 상황적인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 가장 재밌는 코미디가 나온다고 본다.
이해제 거기에 더해 코미디는 논리적이다. 형님이랑은 이런 부분이 잘 맞아서 아닌 것은 서로 아니라고 정확하게 얘기해줄 수 있다. 코미디를 개인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감정의 논리를 굉장히 오랫동안 진지하게 바라봐야만 한다. 관객들이 설득되는 것도 결국은 논리적인 부분 때문이다.

이해제 연출가는 그동안 <웃음의 대학>, <키사라기 미키짱>, <톡톡> 등 일본과 프랑스의 희극작품을 해왔다. 나라마다 웃음의 지점이 다른가.
이해제 다 똑같다. 그리고 다르다고 생각하면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 배우들이랑 얘기할 때 항상 전제로 하는 것이 인물의 전사다. 설명되지 않은 전사들에서 감정선을 찾아내는 작업 끝에 코미디가 나온다. 일본 작품 하고 있으면 ‘일본 통’이라고 하고, 프랑스 작품 하면 ‘프랑스 통’이라고 하는데 (웃음) 그냥 다 똑같다. 진수 형님은 고릿적 개그부터 현대적 상황극의 문법을 다 알고 있고, 웃음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어떤 희극인들을 좋아하나.
김진수 (임)하룡이 형. 하룡이 형님이랑 박중훈 선배가 하는 코미디를 좋아했다. 외국배우는 로빈 윌리엄스.
이해제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고 자란 세대다. 그때는 주현 선생님 같은 감초 배우들도 많았다. TV가 전부이던 시절이었으니까 유행어가 하나 나오면 온 국민이 그걸로 한 달은 즐겁게 보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상황적 코미디도 좋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것들이 다 유럽권에서 시작된 코미디의 기초들이더라.

희극이 강세인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이해제 대중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을 얕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작가 미타니 코키를 좋아하는데, 그가 작업한 작품들을 보면 소재가 굉장히 다양하다. 처음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봤을 때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러다 2008년에 <웃음의 대학> 한국 버전을 연출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시대를 배경으로 희극을 쓰는 작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극중 작가인 츠바키가 이런 말을 한다. “나에게는 웃음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중요하다.” 그가 보여주는 진중함과 무게감에 동감했고,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을 작업한다는 것에서 큰 힘을 얻었다. 여전히 희극은 중요하다. 웃음이 있어야 슬픔도 배가 되니까. <독심의 술사>도 꼬여 있는 인간사를 담았기 때문에 마냥 끝까지 웃기기만 하는 연극은 아니다.

정말 독심술이 생긴다면

만약 독심술이 생겨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누구의 마음을 읽고 싶나.
김진수 나는 안 읽는 게 나은 것 같다. 너무 많이 알아도 도움이 안 된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그냥 작품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상대의 말을 이해는 못하더라도 곡해는 하지 말자는 거다. 독심술은 없는 게 좋을 것 같다.
이해제 모두가 투명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있는 그대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불편하고 아픈 게 아닐까. 상대가 상처받을까봐 맞춰주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경계심과 가짜웃음이 생긴다. 가짜웃음이 하얀 거짓말일 텐데, 모두가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다면 그런 하얀 거짓말도 필요 없어지지 않겠나.

12월 24일부터 28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고양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김진수 고양아람누리에서 두 세 번 정도 공연을 했었는데, 관객 분들 반응이 정말 좋다. 서울에서보다 더 좋은 감정을 느낄 때들이 있다. 어쩌면 관객들보다 내가 더 고양 공연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재밌게 봐주실지. (웃음)

글. 장경진(공연칼럼니스트)
인터뷰 사진. 하경준(캐치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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