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줄이면 수준은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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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한상원 인터뷰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의 변화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2020년 한 해 꾸준히 이루어졌다. 변곡점의 한가운데에서 예술가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어떤 미래일까. 지난 10월,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한상원 씨를 만나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음악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돌아다보니 귀한 게 참 많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한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이번 기회에 잠시 멈추게 되었다. 멈춰 서서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갈 뻔했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전설로 꼽히는 기타리스트 한상원(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거주, 61세) 씨의 말이다. 나의 질문은 피상적이었고 그의 대답은 핵심을 쿡, 찔렀다.

고양문화재단이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고양시 거리예술 단체들의 온라인 공연 생중계 프로그램 ‘고양버스커즈 집콕콘서트’ 시즌2 출연을 앞두고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물었고 그는 ‘돌아보게 되었다’고 답했다.

“돌아다보니 귀한 게 참 많았다. 식구들, 친구들, 공기들, 오늘 이 가을 날씨도 참 귀하다. 그동안 뭘 그렇게 모으려고만 했다. 아마도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되면서 불가피하게 잠시 멈추게 되었고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집안 구석구석에 귀한 게 참 많더라. 옛날에, 한 30년 전 쯤에 녹음했던 카세트테이프도 꺼내서 들어보았는데,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계속 쌓아놓기만 했을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우리 모두의 2020년이 그렇게 전개되었다. 처음에, 코로나19는 약간만 주의하면 금세 물러갈 듯이 보였다. 그러던 것이 2020년 12월 현재, 코로나19는 우리와 더불어 사계절을 함께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고 마는 것인가.

기타리스트 한상원

미래가 조금 서둘러 왔다고 생각하자

“언젠가는 물러갈 것이다. 그 사이에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모든 게 낯설고 힘들기는 했다. 연주자로서 공연 무대가 줄어든 것도 있고 무엇보다 학생들을(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한동안은 비대면으로 가르쳐야 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언젠가 인류에게 다가올 미래가 조금 서둘러 왔다고 생각하자. 비대면,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가 온 셈인데,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것은 새로운 미래이고 실험일 수 있다. 당장은 답답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여러분들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것이다. 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코로나19 상황이지만 이미 현실이 된 마당에 그 역설적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쩌면 이 상황은 우리에게 미래를 미리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비단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류의 일상은 더 빠르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기존의 삶의 형식에서 벗어나 비대면의 네트워크 시대로 진입하던 중이었다. 그 진입의 속도는 브레이크조차 없는 것이어서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데도 그것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어찌되었던 직진하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스치고, 눈빛을 나누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헤어지던 일상이 사라지고 온갖 비대면 기술로 전환되어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풍경이 아득한 옛 추억처럼 흘러가던 중이었다.

그랬는데 코로나19가 엄습하였고, 일순간 우리 사회의 모든 행위가 비대면으로 재편되면서, 누구나 자기의 자리에서 ‘아, 이러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다. 사람이 서로 마주 앉는다는 것,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본다는 것, 누군가 말을 하면 그 말의 음절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호흡과 눈빛과 미세한 동작까지도 함께 듣는다는 것. 그러한 일상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풍경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야 깨닫는 중이다.

고양문화재단의 ‘2020 마을단위 문화거점사업’ 일환으로 주엽커뮤니티센터가 주최한 ‘주엽마을, 우리문화 순례展’에서 오프닝 공연 중인 한상원밴드

욕심을 줄이면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고양문화재단이 2020년 하반기에 마련한 ‘고양버스커즈 집콕콘서트’(이하, ‘집콕콘서트’)가 소중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반기에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공연 문화로서 온라인 공연 생중계 ‘집콕콘서트’를 실험했던 고양문화재단은 가을에는 여러 장르에 걸쳐 ‘글로컬(글로벌+로컬)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의욕적인 공연 무대를 만들었다.

9월 23일에 시작하여 11월 25일까지 전개된 하반기 집콕콘서트에는 고양버스커즈 40팀과 글로컬 아티스트 5팀이 참여하였다. 한상원 씨가 이끄는 ‘한상원밴드’도 글로컬 아티스트로 초청을 받았다. 거리공연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돕고, 음악으로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한상원밴드는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고양시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한상원 씨는 이 공연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사실 이 공연만이 아니라, 몇 해 전부터 한상원 씨는 고양시의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행사를 비롯하여 특히 코로나19가 엄습한 올해에는 더 많이, 더 자주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난여름, 지하철 3호선 주엽역 앞 8차선 도로 아래, 기존의 지하도에 조성한 ‘주엽커뮤니티센터’에서도 한상원 씨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연주를 했다. 코로나19에 무더위까지 겹친 날이었지만 고양의 시민들은 한상원 씨의 기타 소리에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전국 어디라도 무대가 있으면 신이 나고 그래서 일정만 되면 어디든 가지만, 무엇보다 고양시에서 마련한 무대는 많이 참여하려고 한다. 사실 고양시는 음악 문화에 충분한 저변이 형성되어 있다. 100만이 넘는 인구에 수준 높은 공연장이 있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교육 수준이나 문화적 기반이 다른 도시보다 뛰어나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문화생활, 특히 음악 문화를 즐기기 위해 서울로 나가는 일이 많다.”

“조금만 욕심을 줄이고 규모를 줄이면 고양시에서 얼마든지 수준 높은 음악문화를 만들 수 있다. 꼭 유명 스타가 출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액의 개런티나 무대장치를 화려하게 만드는 데 드는 비용으로 더 많은 음악가들, 청년 연주자들, 미래를 꿈꾸는 아마추어 밴드들을 배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요한 것은 기획력이다. 한상원 씨의 관점에 따르면, 기획력은 ‘섭외력’이 아니다. 유명 스타를 섭외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고양시의 크고 작은 공연장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이에 기반하여 장르를 편성하고 음악가들을 초청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확실한 방향과 주제로 전개되는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고양문화재단의 2020 하반기 ‘집콕콘서트’가 상반기에 비하여 다양한 장르의 안배와, 그에 따른 다채로운 출연진 구성으로 시도된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지난 10월 28일 새라새극장에서 집콕콘서트 공연 영상을 촬영 중인 한상원밴드

존중받는 경험은 더없이 소중하다

이참에, 아예 고양시에 거주하는 각 장르별 전문가를 중심으로 음악문화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하여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작은 공연문화에서 음악 한류의 근거지가 될 만한 대규모 공연까지 기획하고 실천하는 차원으로 그 상상력을 확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의견에, 한상원 씨는 금세 동의를 하며 다음처럼 덧붙였다.

“고양시에 작곡가, 연주자, 가수, 기획자, 평론가 등 음악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다. 여기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일반 시민들과 자주 만나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일회적인 공연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또 가르치는 문화도 필요하다. 요즘 청년세대들에게 과거처럼 ‘맨땅에서 헤딩’하라고 할 수는 없다. 작곡이든 연주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교류하다 보면 5년, 10년 걸리는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시나 문화재단에서 음악가들을 존중해야 한다. 공연 환경도 잘 구축할 필요가 있고 개런티나 악기 관리, 무대 준비, 공연자 소개 등에 섬세한 존중이 필요하다. 널리 알려진 사람만이 아니라 이제 막 무대에 오르는 아마추어들, 젊은 음악가들을 존중해야 한다. 비록 현실이 당장 어렵긴 해도 존중받는다는 느낌,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아주 소중하다.”

그것이 비단 음악가들을 위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 저마다의 일상을 이해하고 각자의 감수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시민문화’일 것이다.

10월 22일 공연·녹화된 한상원밴드의 집콕콘서트 연주는 10월 28일부터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비록 비대면이지만, 한상원밴드를 비롯하여 ‘최과장 프로젝트’ ‘201밴드’ ‘미니트리’ 등 고양버스커즈들의 수준 높은 연주를 ‘함께’할 수 있다. 이 공연을 마무리하면서 한상원 씨는 고양의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드시죠.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힘든 일이 올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면서 또 다른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대, 우리가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글. 정윤수(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
사진. 노승환

한상원밴드의 집콕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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