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는데 죽은 게 아닌, 살았는데 산 게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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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죽음의 집>

지난해 제41회 서울연극제 희곡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극단 아어의 연극 <죽음의 집>은 서울연극제 본 공연은 물론 연장 공연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한 화제작이다. 올해는 4월 30일(금)부터 3일간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다.

코로나19와 함께 생활한지 1년이 지났다. 일상을 전복시킨 바이러스에 적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즈음, ‘코로나블루’라는 우울감과 무기력을 기본 감정으로 장착하고 살아가다 보니 삶과 죽음이 새삼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죽는 건 무엇이고 사는 건 무엇일까? 어떤 것이 살아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죽은 것일까? 바이러스 덕분에(?) 한층 깊어진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연극적으로 풀어놓은 작품이 <죽음의 집>이다.

아들이 풀어낸 아버지의 숙제

‘고양문화재단 2021 새라새 ON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죽음의 집>은 매우 흥미로운 이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죽음의 집>은 故 윤영선 작가의 미완성 희곡이다. <여행>, <키스>, <사팔뜨기 선문답> 등으로 유명한 윤영선 작가가 마무리를 하지 못한 채 남겨둔 희곡이었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윤영선 작가 추모 공연 등에 함께 할 수 없었는데, 그 미완의 영역을 윤영선 작가의 아들인 윤성호 작가가 마무리를 했다.

대를 이어 희곡작가가 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거기에 아버지가 남겨 놓은 숙제를 아들이 풀어낸 것은 우리나라 연극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죽음의 집>은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며 완성된 희곡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거기에, 윤성호 작가는 단순히 마무리를 한 것이 아니라 마치 한 명의 작가가 쓴 듯이 매끄럽게 끝을 맺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원작자인 윤영선 작가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둘째는 윤성호 작가가 그 현재성을 적극적으로 발견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낙에 윤영선 작가가 현대적인 작가이긴 하지만 그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윤성호 작가의 노력으로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냈다.

연극 <죽음의 집>

삶의 영역인지, 죽음의 영역인지

스스로 완성을 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충실히 살려내기 위해 윤성호 작가는 연출까지 겸했다. 2020년 제41회 서울연극제에서 희곡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것은 윤성호 작가 겸 연출가의 노력이 그대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아버지와 함께 완성한 희곡으로 희곡상을, 그 희곡의 색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연출적으로 공들인 것을 인정받아 연출상을 수상한 것이다.

<죽음의 집>은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많다. 우선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이 깔끔한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무균실을 연상시키는 하얀 거실, 그리고 뒷면의 거대한 거실 창은 그곳이 삶의 영역인지 죽음의 영역인지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주제를 선명하게 한다. 투명한 장면과 탁한 장면을 조율하는 조명은 인물의 감정선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앙상블이다. 문현정/정새별(더블캐스팅), 백석광/이형훈(더블캐스팅), 심완준, 이강욱은 젊은 배우들이지만 연기 내공이 탄탄한 실력파 배우들이다. 자신이 연기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상대방과 관계를 맺어야하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연기하기 때문에 넘치거나 부족함 없는 연기의 조화를 보여준다.

연극 <죽음의 집>

죽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삶을 향하는

<죽음의 집>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워내면서 살아 있으되 죽은 것, 죽었으나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내일이 나아질 게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 아침에 눈을 뜰 때” 죽음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의 허무를 각성시키면서 동시에 “난 아무데도 없다고 생각하는 난 뭐지라고 생각하는 나는, 여기 있어. 없는데, 있어.”라며 인간 실존의 문제로까지 확장한다.

매일매일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정말 살아 있는 것인지, 어떤 의미에서 살아 있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등등 끝도 없지만 그만큼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을 보면서 관객들도 생존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 그 고민의 힘으로 죽음이 넘실대는 세상을 버텨내고 견뎌내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연극 <죽음의 집>은 죽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삶을 향하고 있기에 이런 기대와 바람을 가져본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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