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른들이 더 공감할 청소년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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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몬드>

5월 15일(토)부터 30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아몬드>는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고 공감과 소통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몬드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소설 <아몬드> 中

연극 <아몬드>는 2016년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손원평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의 ‘아몬드’는 정서를 관장하는 뇌 기관 중 하나인 아미그달라(amygdala)를 의미한다. 아미그달라는 라틴어 ‘아몬드(almond)’에서 유래했는데, 아마도 아몬드를 닮아 그런 듯하다. 동물은 기억에 정서를 입히는 이 아미그달라를 통해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와 증오, 공포 등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아미그달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감정표현 불능증을 겪게 된다고 한다. 보다 엄밀한 표현으로는 감정‘표현’ 불능증보다 감정‘인지’ 불능에 가까울 것이다. 감정의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표현 이전에 감각조차 불가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정서적 장애를 의학용어로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라고 부른단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바로 이 알렉시티미아를 가진 소년이다. 선천적으로 아미그달라가 발달하지 않은 윤재에게는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윤재를 사이코패스 취급하며 ‘괴물’이라 부른다. 

연극 <아몬드>

서로 다른 이유로 괴물이 된 두 소년

작품에는 또 한 명의 괴물로 윤재의 동갑내기 친구 ‘곤’이 등장한다. 곤은 윤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 윤재의 문제가 그의 아몬드가 작은 데에서 비롯된다면, 곤의 문제는 비유하자면 아몬드가 너무 큰 데에서 비롯된다.

곤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데, 폭력적인 양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 유괴되어, 입양과 파양 등을 거쳤던 유년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아미그달라는 생존을 위해 발달한 기관으로, 부정적 감정과 관련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은 윤재의 유년 시절 체험으로 시작된다. 열여섯 생일날 불의의 사고로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윤재는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죽음을 앞둔 아내를 위해 잠시만 잃어버린 아들 행세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하필 그 잃어버린 아들이 곤이었던 것. 서로 다른 이유로 괴물이라 불렸던 두 소년은, 이후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것들을 배우게 된다.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적 상상력

보통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무대화할 때의 관건은 ‘선택과 집중’에 있을 것이다. 시‧공간적 제약이 많은 것, 그리고 제한적 인력으로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압축해야 하는 것은 무대예술이 가진 장르적 한계다. 그리고 그것을 ‘연극적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게 연출의 숙제일 것이다.

일단 연극 <아몬드>는 다섯 명의 배우가 출연하고, 배우들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다. 하지만 이는 문학을 숙주로 하는 대부분의 공연이 취하고 있는 보편적인 방법론에 속한다. <아몬드>에서 조금 다른 결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일인다역에 더해 다인일역을 시도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을 듯싶다.

다음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특히 원작 소설처럼 대화보다는 주인공의 내적 독백으로 서사가 이어지는 1인칭 소설을 대사화하는 작업일 것이다. 이는 방백이나 독백으로 처리가능하다. 혹은 보이스오버의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따금 자막을 활용하여 소설의 문장을 그대로 시각적 기호로 표현하기도 한다.

연극 <아몬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소설의 몇몇 장면을 레터링으로 표현한다. 이에 더해 무대가 되는 책방의 공간적 특성을 통해, 소설의 문장과 활자, 책방의 알레고리를 무대화해내었다.

그러나 아마도 연극 <아몬드>에서 가장 상상력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부분은 윤재가 건달 철사를 만나는 장면일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결말에 해당하는 이 장면은, 윤재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학교를 떠난 곤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학교를 떠난 곤은 스스로 건달 철사의 밑으로 들어가고, 윤재는 그러한 곤의 마음을 돌리고자 철사를 찾아간다. 이 장면에서 연출가 민새롬은 색다른 실험을 진행하는데, 이 대목에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 나을 듯싶다. 궁금한 분들은 직접 무대에서 확인하시라.

연극 <아몬드>

청년기로부터 멀어진 이들을 위해

원작 소설이 거둔 ‘문학상 수상’이라는 성과는 작품성에 대한 신뢰를 주기 충분하다. 그러나 문학상 앞에 달린 ‘청소년’이라는 단어는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청년기를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는, 먼 과거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러나 어쩌면 청년기로부터 멀어진 어른들에게 연극 <아몬드>는 더 적합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희로애락의 갖은 세상사를 겪으며 감정이 닳을 대로 닳아버린 이들에게 윤재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침묵은 과연 금’이라며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라고 배워온 세대라면,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라는 덕목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그것에 체화된 세대에게 말이다.

글.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 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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