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하모닉, 음악으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만나다

고양에서 펼쳐지는 지역 예술의 향연
2018년 3월 2일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봄은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2018년 3월 2일
얍 판 츠베덴 & 경기필하모닉
뉴욕필 상임지휘자 얍 판 츠베덴

얍 판 츠베덴은 올해 쉰 일곱의 네덜란드 지휘자이다. 지휘를 하기 전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몇몇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줄리어드로 넘어가 도로시 딜레이에게 배우고는 곧바로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때 나이가 열아홉. 악단이 창설된 이래 최연소였다.
명성으로도, 실제로도 훌륭한 오케스트라였다. 현대 오케스트라가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번스타인, 아르농쿠르, 솔티와 같은 수많은 지휘자들을 바로 옆에서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판 츠베덴이 로열 콘세트르허바우와 함께 보낸 시간은 17년. 그가 청춘의 전부를 오케스트라에 쏟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지나치게 빨리 내달려온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마침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였다.

콘세르트허바우에서의 시간은 환상적이었지만 인생을 다시한번 살 수 있다면 조금 천천히 갔을 겁니다.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지만 저는 소년이었죠.”

처음에는 지휘를 할 생각은 없었다. 대부분의 뛰어난 연주자들이 자신이 이룩한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기도 했고,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에서 20년 가까이 악장으로 일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악기는 이미 삶이나 마찬가지다. 지휘봉 따위는 들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베를린에서 말러 <교향곡 1>을 연주하는 날이었는데 그날 지휘를 맡은 번스타인이 연습 도중 제게 ‘1악장을 지휘해보게라고 하더군요. 저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죠. 지휘 같은 것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번스타인은 그냥 보고 싶으니 한번 해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지휘를 했고 연주가 끝나자 번스타인은 음 좋지 않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고도 넌지시 건넸지요.”

얍 판 츠베덴은 그때 마음 속에 작은 불씨가 심어졌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작은 오케스트라에서 시작해 프로그램을 짜고 오케스트라의 합을 맞춰가는 데서 즐거움을 얻었다. 네덜란드의 오케스트라에서 시작해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댈러스를 기점으로 활동한 그는 2010년대 들어서는 고국의 선배 지휘자 에도 데 바르트의 뒤를 이어 홍콩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휘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과거에 무얼 했는지 까맣게 잊은 듯하다. 얍 판 츠베덴도 더 이상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에르 몽퇴부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샤를 뮌슈,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독립한 네빌 마리너처럼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는 그간 적지 않게 있었고, 그들은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다. 얍 판 츠베덴이 전해 줄 수 있는 경험이 바로 여기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만들어냈던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경험까지 쌓아냈다.

연이은 공격적인 초청으로 업계에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는 경기필하모닉은 지난 2016년, 리카르도 무티에 이어 올해에는 다니엘레 가티와 얍 판 츠베덴을 초청해 연주회를 연다. 이 네덜란드인의 이름이 두 명의 이탈리아인에 비해 네임 밸류가 다소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법도 하지만 최근 판 츠베덴은 앨런 길버트의 뒤를 이어 2018/19시즌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며 굵게 한 줄 새기기 좋은 프로필을 추가했다. 상승세에 있는 지휘자의 경력은 오는 3월, 그와 함께하는 경기필하모닉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경기필하모닉과 얍 판 츠베덴은 2018년 3월 22일 목요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오는 3월 24일 토요일 오후 5시에는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두 번째 공연을 가진다.

좌.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우.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경기필하모닉과 얍 판 츠베덴은 작품 하나하나만으로도 배가 부른 레퍼토리를 한꺼번에 준비했다. 작곡가와 작품 모두 생소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진지한 요한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을 시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협연으로 요하네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이어 연주한다.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의 표준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들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것이다.

요한 바게나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 Op. 23

요한 바게나르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신지? 이 낯선 이름의 주인공은 오르간 연주와 교육으로 대부분의 커리어를 쌓았고 오르간 음악, 오페라, 칸타타, 그리고 오케스트라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도 적지 않게 남겼지만 쉽게 접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시대의 선구자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바게나르처럼 이름이 희미한 작곡가들이 대부분 쉽게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다. 여기서의 선구자는 엄정한 교향시의 장인이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하지만 바게나르의 작품처럼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은 항상 있어왔다. 다만 우리는 시대의 천재들에게 과하게 시간을 쏟았을 뿐이다.

요하네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 77

사람 좋아 보이는 수염 뒤에 숨은 요하네스 브람스는 불안했다. 그에게는 겸손한 강박이 있었는데 그 내용인 즉슨 이렇다.

선배들의 유산을 그 누구보다 존중하는 브람스는 자기 자신 또한 음악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쓰고 싶다. 허나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작업은 지지부진 하다. 그에게 언제나 필요했던 것은 과거를 이겨낼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브람스가 작품을 써내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결과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어렵사리 써낸 교향곡에 이어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베토벤의 작품이 브람스의 모델이 되었는데, 베토벤이 자신의 협주곡에서 협연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 이상으로 브람스의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협연자를 강하게 압박해 성과를 얻어낸다. 브람스는 이 쉽지 않은 작업에서 세상 위대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을 옆에 두고 큰 도움을 얻었다.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둘이 적지 않게 싸운 것은 잠시 뒤로 하자.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마단조 Op. 64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는 생애 6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번호가 붙지 않은 <만프레드 교향곡>을 합하면 일곱 작품을 남긴 셈인데 이 숫자가 실은 차이콥스키에게는 부담스러운 수였다. 차이콥스키는 스스로를 ‘교향곡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 말했다. 형식을 구축하면서 악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누구보다 감정이 흘러넘치는 작곡가였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4, 5, 6번 교향곡은 그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많은 인기를 얻었다.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6번 ‘비창’>의 경우 마지막 악장이 처절하게 끝난다는 점에서 실패의 불씨가 상당했지만 이 <교향곡 5번>은 누가 들어도 완벽하게 성공을 예감할 수 있는 작품. 여기서 작곡가는 완벽한 감정의 데칼코마니인 1악장과 4악장에 흐트러짐 없는 2, 3악장을 포개고 있다. 방점을 찍는 것은 4악장의 피날레. 너무나 감상적이어서 품위를 잃기 쉬운 부분에서 차이콥스키는 음악의 품위를 지켜내며 우리에게 어김없이 감동을 선사한다.

 

글. 윤무진(음악 칼럼니스트)

얍 판 츠베덴 & 경기필하모닉

일 시  3.24(토) 5: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

입장료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대 상  초등학생 이상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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