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덜트, 즐거운 공상가가 되어 현실을 살아가다

4월에 만나는 고양미술인 – 최인경, 김상진
2018년 3월 31일
인간적이거나 인간적일지도 모를, 평화
2018년 4월 13일
32018년 4월 13일
“어떤 이들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단순한 모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다른 어떤 이들은 껌종이에 쓰인 성분표를 읽고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中에서

불과 10년만 해도 오타쿠(otaku, 御宅.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문화, 마니아 문화라며 소수의 사람들만 즐기는 문화로 여겨지던 만화, 게임 등의 서브컬처 장르가 이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유행하는 콘텐츠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사랑 받는 세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이불 속에서 만화를 읽었던 기억, 친구들과 동네를 뛰어다니며 저마다 스파이더맨, 헐크 등의 캐릭터 이름을 붙이고 역할 놀이를 했던 기억, 밤을 새며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보았던 기억 등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고 미쳐있던 콘텐츠에 대한 기억들이 지금의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무기력한 내 모습과 달리 무언가에 미쳐 한껏 즐거움에 사로잡혔던 과거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리운 까닭인 걸까.

어린 시절의 낭만과 꿈, 즐거움을 여전히 간직하면서 장난감, 게임 등을 수집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우리는 ‘키덜트족’이라고 한다.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이 되기로 결심한 그들은 타인들의 우려와는 달리 단순히 문화 콘텐츠를 맹목적으로 소비하는 삶의 방식보다는, 자신이 부여하는 삶의 가치를 더욱 중요시한다. 그들은 자신의 소득 수준 안에서 적성과 취미에 적합한 형태로 콘텐츠를 음미하는 합리적 소비자들이다. 말하자면, 다분히 현실적인 어른의 모습을 하면서 어린 시절의 즐거움과 낭만을 토대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피터팬의 감성을 가진 후크 선장들인 것이다. 특별히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밀도 높은 행복을 추구하는 면은 요새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의 줄임말)과도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독고영재와 최민수 주연의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는 할리우드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미쳐 꿈을 키워나간 주인공이 환상에 빠져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 시대의 ‘키덜트족’은 아마 ‘용산 키드’쯤으로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우리가 탐닉했던 그 모든 콘텐츠들은 용산 전자상가에서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용산 키드’들은 할리우드 키드와는 아마 다른 삶을 살게 될 듯 하다. 비현실의 콘텐츠가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수단과 즐거움으로 비현실의 콘텐츠를 음미하는 영리한 사람들이니까. 각박한 현실의 삶에서 떠올리는 유치한 공상의 즐거움. 이를 이해한다면 당신도 아마 어엿한 ‘키덜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두근거리게 했던 것에 다시 한번 관심을 기울여보자. 그 시절 당신의 즐거움과 환희가 다시 깨어날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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