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에 담긴 슈베르트의 젊음과 만년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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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슈베르트(1797~1828)의 피아노 소나타로 4년간 이어온 전곡 연주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에 선보일 전국 투어 중 9월 16일에는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무대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6번과 17번, 그리고 21번이 오르는 시간이다. 설령 김정원의 지난 여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21곡 중 대곡(大曲)인 소나타 21번으로부터 배어나올 김정원의 ‘슈베르티즘’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소나타 6번 D.566, 17번 D.850, 21번 D.960은 각각 1817년, 1825년, 1828년에 작곡되었다. 슈베르트의 작품에 붙는 ‘D’는 ‘도이치 번호’라고 읽는다. 슈베르트의 작품을 오토 에리히 도이치란 학자가 시대 순으로 정리하였기에 붙여진 것이다. 김정원의 무대를 만나기 전, 이번에 오르는 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스무 살 청년의 열정과 고뇌, 피아노 소나타 6번 D.566

소나타 6번을 작곡하던 1817년에 슈베르트는 스무 살 청년이었다. 혈기왕성한 그는 그해 3월부터 8월까지 7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6월에 작곡한 곡만 5번·6번·7번. 한마디로 슈베르트가 피아노 소나타를 향한 열정과 그로부터 시달린 젊은 날의 방황이 6번에 담겨 있다. 흔들리는 고뇌는 아름다운 법이지 않던가. 그래서 소나타 6번은 슈베르트의 시적 아름다움, 그 자체다.

1악장(모데라토)은 멜랑콜릭한 가면을 쓰고 시작하지만, 그 가면을 곧 벗는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1주제는 점차 셋잇단음표의 분산화음을 거쳐 전개부로 들어간다. 중간마다 악상은 이 가면을 다시 쓰곤 한다. 변화무쌍한 악장이다.

2악장(알레그레토)은 즐거운 흐름 속에 가곡의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그 노래는 단아하다.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슈베르트가 후대에 왜 ‘가곡의 왕’이라 불리었는지, 이 악장의 선율선이 잘 대변해준다.

[Schubert Piano Sonata No.6 in E minor D.566]

자신만의 길을 향한 큰 한 걸음, 피아노 소나타 17번 D.850

슈베르트가 1815년부터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걸작과 대가의 모방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로부터의 이탈과 모색의 몸부림으로 낸 길이기도 했다. 특히 빈의 음악가들에게 베토벤(1770~1827)의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들은 베토벤처럼 되고 싶어 했고, 그를 뛰어넘고 싶어 했다. 1825년에 작곡한 소나타 17번은 슈베르트가 이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발 크게 내디딜 때 내놓은 작품이다. 수개월 동안 소나타와 교향곡의 대곡을 완성시킨 자신감이 큰 역할을 했다.

1악장(알레그로 비바체)의 첫 주제는 화음부터 중후하다. 이어 그것과 대조를 이루는 셋잇단음표가 중요한 소재로 활용된다. 제2주제의 리듬은 경쾌하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가 다시 사용된다. 풍부한 화음과 셋잇단음표, 여기에 조바꿈도 활발하다. 재현부는 제시부의 구성을 충실히 지켜낸다. 뒤에서 피아노는 1주제를 회상하며 끝을 맺는다.

2악장(콘 모토)은 풍부한 울림을 지닌 아름다운 주제를 세 박자의 독특한 리듬으로 노래한다. 차분하되 정열을 지닌 노래다. 중간부터 쉼표와 싱커페이션(당김음)이 자주 사용된다. 전반부의 주제가 변주되기도 한다. 이 악장에서 저음부는 반주로 국한되지 않고, 조용하고 차분한 열정으로 곡을 클라이맥스로 이끌어 간다.

3악장(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은 활발하고 생기에 찬 주제로 시작된다. 중간부는 점리듬 화음이 갖가지 조성 사이를 장식한다. 슈베르트 특유의 화성 감각이 돋보인다. 2악장을 마무리 짓는 차분한 분위기에 이어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3악장의 경쾌한 흐름으로 이 소나타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 정도로 인상적이다.

4악장(론도. 알레그로 모데라토)도 가볍고 사랑스러운 론도 주제로 시작된다. 2부의 화려한 조바꿈을 지나, 3부에서 론도풍의 선율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 주제는 더 섬세하게 포장되어 있다. 5부에서 이 주제는 다시 반복된다.

네 개의 악장 중 2악장은 음악이 비현세적인 높이로 올라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아련함이, 3악장은 슈베르트의 독자적인 화성 감각에 의해 놀라운 울림이 인상적이다. 4악장은 귀여운 남성과 진지한 여성이 함께 보폭을 맞추며 산책을 하는 듯한 회화를 연상케 한다.

[Schubert Piano Sonata No.17 in D major, D.850]

슈베르트 양식의 완성,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

소나타 21번은 1828년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슈베르트가 쓴 유작 시리즈(19번·20번·21번) 중 한 곡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인지 이 곡은 슈베르트적인, 슈베르트만의 색채로 다져진 작품이다.

1악장(몰토 모데라토)의 시작은 한마디로 ‘슈베르트적’이다. 한 편의 가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선율선들이 인상적이다. 그 선율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테너 같은 굵은 선과 소프라노의 가는 선이 교차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같기도 하다. 발전부도 C# 단조로 두 주제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노래로 시작된다. 이 악장은 저음역의 트릴이 인상적이다.

2악장(안단테 소스테누토)은 여유로운 오른손의 선율이 왼손이 짚는 폭넓은 옥타브 속에서 풍부한 표정을 짓는다. 이 선율은 2부에서 A장조로, 3부에서 C# 장조로 연주된다. 조를 갈아타는 선율이 맴도는, 그래서 그 선율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악장이다.

3악장(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 콘 델리카테차)에서 슈베르트는 베토벤적인 분위기에서 이탈하여 그만의 독자성과 고귀함을 발산한다. 경쾌하게 전체가 약하게 연주되며, 섬세한 정감이 돋보이는 악장이다. 트리오는 B♭ 단조의 소박한 선율이 싱커페이션으로 연주된다. 왼손도 한 마디마다 각 1박에 ‘그 음을 특히 세게’를 뜻하는 ‘sfp(sforzando piano)’가 있어, 리듬의 흥미로움을 강조한다.

4악장(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은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자, 21곡에 이르는 피아노 소나타 시리즈의 마지막 악장이다. 죽음을 앞두었지만 그의 뇌리에는 경쾌한 악상이 가득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대목이 1주제를 이룬다. 2주제의 후반에는 점리듬의 선율이 나타나고, 왼손이 연출하는 셋잇단음표에서 춤곡의 분위기까지 나타난다. 후반부에는 초입부의 선율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프레스트로 빨라지고, 단숨에 음악은 끝을 맺는다.

슈베르트는 이 작품을 통해 슈베르트적 양식을 남기고 죽었다. 작품을 남긴 자는 작품과 함께 사라지지만, 양식을 남긴 자는 영원히 기억되지 않던가. 그래서 소나타 21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작곡가의 일생과 사유 전체를 호흡하는 것이다. 김정원을 비롯하여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이 슈베르트와 호흡하던 긴 시간을 이 작품으로 마침표로 찍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그-슈베르트 혹은 김정원-의 음악에 빠져들 시간이다.

[Schubert Piano Sonata No.21 in D major, D.960]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2018 김정원 피아노 리사이틀

일 시 9.16(일) 5: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

관람료  R석 4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대    상  초등학생 이상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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