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토) 2시 공연 후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 왼쪽부터 김창훈 프로듀서(고양문화재단), 성기웅 연출, 박재영 선생(구보 박태원의 차남)
성기웅이 강희제 배우와 비슷한 나이였을 시절, 군 제대 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학생 신분으로 1년간 도쿄 외국어대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일본인들이 국문학 전공인 자신도 잘 모르는 월북작가 박태원(월북문인의 해방이전 작품 공식해금 조치, 1988년)의 작품을 분석하는 비교문학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30년대 당시 계몽주의나 계급주의를 내세운 주류 문학과 달리 박태원은 문장과 형식을 실험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경성의 풍경과 풍속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성기웅이 연극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나 방향이 구보와 다르지 않다. 또 젊은 성기웅과 지금의 성기웅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10.10~13)에 이어 곧바로 CKL스테이지(10.18~27)에서 무대를 올린다. CKL스테이지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늦잠에 빠진 구보를 여동생 경원이 깨우는 연극 첫 장면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밤늦도록 소설을 쓰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인 ‘청계천 광교 옆 다목적(다동) 7번지 공애당 약국 2층 방’이 있던 자리로 박태원의 생가 터이다.
작품에 풍성한 의미를 더하자면, 며칠 기다려서 서울에서 보면 될 것을 새라새극장, 것도 첫날 공연을 본 이유가 있다. 경성 연극이 다시 시리즈를 시작하는 첫 순간을 배우들과 같은 입장에서 즐기고 싶었다. 서울이 아닌 고양이 한 달이 넘게 손발을 맞춘 지역인데다, 데뷔하는 두 배우에게는 더욱 특별한 공간일 테다. 아무려나 시리즈를 비교하자면 완결작 <20세기 건담기> 이상이 없으리라 여겼는바, 작년에 무성영화 변사 못지않은 <20세기 건담기>의 노련한 배우들을 보다가 이번에는 살짝 덜 익은 풋사과랄까, 한편으로 연기가 생생하니 경성사람들과 비슷한 듯싶어 마음에 든다.
그저 한 가지 바람이었다면 새라새극장이 객석을 넣고 빼고 무대변형이 자유무쌍하고, CKL스테이지도 무대와 객석 구분을 입맛에 맞게 구조 변경할 수 있는 극장이라 색다른 무대 구성을 기대하긴 했었다. 하여 앞으로 이 젊은 프로덕션이 올릴 나머지 연작 3편도 연출의 제작 계획과 별개로 기대하며 기다리겠다.
마지막으로 짧게 소회를 더하면 극장 옆 주차장으로 난 쪽문으로 나오는 박경구 배우와 눈이 마주쳤는데 무대의상으로 입은 한복이 평상복인 듯 당황한 기색 없이 느긋한 반면, 전반부 공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 로비에서 본 성기웅 연출은 얼굴이 영 거칠거칠하니 “아~, 덜 맞춰봤으니 후반부가 문제다!”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빠르게 놀리고 있었다.
글. 이태욱(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