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긴밀한 실내악 연주의 정수

나의 남편, 로베르트 슈만
2019년 5월 14일
비올라와 피아노, 환상을 쏘다
2019년 5월 27일
2019 디토 페스티벌 in 고양
앙상블 디토 리사이틀 ‘디토 연대기’

지난 2007년 시작되어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혁신적이고도 대중적인 아이콘으로 자리한 앙상블 디토가 12년의 대장정 끝에 올해를 마지막 시즌으로 결정하였다. ‘클래식과의 공감’을 모토로 그들이 보여주었던 눈부셨던 여정을 돌아보고, 멤버들의 새로운 도약을 가늠할 수 있는 앙상블 디토의 리사이틀이 6월 22일(토)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린다. 섬세하고도 긴밀한 실내악 연주의 정수를 느끼게 될 이번 공연에는 모차르트, 슈만, 브람스, 드보르작의 명곡이 프로그램에 올랐다. 유형종 음악평론가의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 실내악 감상의 묘미를 미리 전한다. [편집자주]

앙상블 디토의 마지막 멤버들.
위부터 아래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다니엘 정(바이올린), 스테판 피 재키브(바이올린), 유치엔 쳉(바이올린), 제임스 김(첼로), 김한(클라리넷), 조지 리(피아노)

실내악의 기본정신에 충실한 균형 잡힌 악곡

슈만 : 피아노 5중주 E♭장조, 작품번호 44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에서 동료 펠릭스 멘델스존과 함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빈 고전파와 슈베르트를 계승하는,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로 이어지게 될 소위 독일음악 정통계보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본질적으로 피아니스트 출신이었으므로 피아노를 위한 독주곡 또는 피아노의 역할이 강조된 리트에 가장 주력했지만 비교적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으며,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난데다가 리더십도 있어서 당대 독일 음악계를 이끄는 멘토 역할을 했다. 또한 아내 클라라와의 사랑은 음악사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과 글에 반영되어 있듯이 환상성이 대단히 풍부하고, 정신병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다가 비극적으로 타계한 점에 있어서도 ‘낭만적’이란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작곡가다.

1840년 클라라와 결혼하면서 슈만의 창작력은 절정에 도달한다. 그해의 가곡, 이듬해의 관현악곡에 이어 1842년에는 특히 실내악곡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피아노 5중주곡 E♭장조도 이 시기의 산물이며 슈만의 실내악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곡으로 꼽힌다. 악기 편성은 피아노와 현악 4중주(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의 구성이다. 그렇지만 협주곡처럼 피아노가 독주를 맡고 현악 4중주가 반주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이 피아노에 주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섯 연주자가 골고루 중요한 비중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균형 잡힌 악곡을 만들어 나간다. 이런 점은 실내악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정신이기도 하다.

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는 위풍당당하고 감격적으로 최상급의 낭만성을 펼쳐 보인다. 소나타 형식이며, 강렬하게 제시되는 1주제가 유려하게 전개되고, 서정적이고 시적인 2주제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코다는 1주제 선율을 활용하여 힘차게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행진곡 풍으로, 조금 느리게’는 일종의 장송행진곡을 연상시키는 대단히 인상적인 악장이다. 스웨덴의 세계적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긴 영화 <파니와 알렉산더>에 사용되어 신비로우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무겁고 우울한 주제에 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심연에 다다른 슬픔을 만나게 되며, 피아노가 날카롭게 이끌어가는 빠른 부분도 비통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다. 다시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에 이어 피아노가 조용히 반복한 뒤 몽환적인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끝난다.

3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는 분방한 역동성 속에 자유롭게 펼쳐지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두 개의 트리오가 있는데, 특히 두 번째 트리오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무궁동(無窮動)을 연상시키듯 리드미컬하게 전개된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1악장의 주제를 다시금 활용하여 슈만다운 환상성을 마음껏 쏟아낸다. 각각의 악기들이 선율을 주고받으며 크게 복잡하지 않은 대위법적 진행을 펼치고, 코다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푸가토를 전개하면서 화려한 클라이맥스로 마무리된다.

 

슈만 피아노 5중주 E♭장조
(피아노_ 마르타 아르헤리치, 바이올린_ 르노 카퓌송, 가브리엘레 셰크, 첼로_ 미샤 마이스키, 비올라_ 라이다 첸)

견고하고 진지한, 독특한 디베르티멘토

모차르트 : 현악 3중주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E♭장조 K.563, 1악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20곡 이상 풍부하게 남긴 디베르티멘토는 희유곡(嬉遊曲)이라고 번역되곤 한다. 농담처럼 즐길 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의 곡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디베르티멘토라는 원어에는 ‘다양성’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악장 수가 다악장곡의 표준인 3~4개보다 많은 편이고, 악기 편성도 특별한 제한을 받지 않아서 상당히 다양하다. 19세기 이후에는 디베르티멘토가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고전주의 시대만을 위한 기악곡 장르였다고 볼 수 있다.

디베르티멘토 E♭장조 K.563은 1788년 가을에 작곡된 모차르트의 마지막 디베르티멘토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현악 3중주라는 아주 단순한 악기편성을 갖고 있는데, 모차르트는 따로 완성된 현악 3중주곡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독보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디베르티멘토에 비해 유희성도 적은 편이어서, 디베르티멘토 중에서도 따로 구별되어 취급되곤 한다.

전체 6개 악장 중 이번 공연에서는 1악장만 연주한다.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인데, 모차르트 시대의 빠른 악장답게 밝고 활기찬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개 방식이 무척 견고하고 진지해서 결코 보통의 디베르티멘토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20세기 전반기의 중요한 모차르트 연구가였던 알프레드 아인슈타인도 명백하게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디베르티멘토라는 사전 정보를 인식하지 않고 그냥 현악 3중주곡이라고 생각하며 듣는 편이 더 낫겠다.

 

모차르트 현악 3중주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E♭장조
(바이올린_ 베로니카 에베를레, 비올라_ 아미하이 그로스, 첼로_ 솔 가베타)

우아하고 그윽한 클라리넷의 매력

모차르트 :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 4악장

모차르트의 실내악 중에서 최고의 명곡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클라리넷 5중주곡 A장조를 첫 손에 꼽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안톤 슈타틀러라는 클라리넷 주자를 위해 1789년에 작곡한 곡이다. 모차르트는 2년 후인 1791년에도 슈타틀러를 위해 클라리넷 협주곡을 작곡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곡의 악기 편성은 슈만의 피아노 5중주곡이 피아노와 현악 4중주였듯이 클라리넷과 현악 4중주라는 구성이다. 클라리넷 특유의 그윽한 음색 속에 모차르트의 내면이 담담하게 그려지는 듯한 1악장도 훌륭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마지막 4악장을 연주한다.

4악장은 주제와 6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혹은 5개의 변주와 코다로 분석되기도 한다. 경쾌하고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주제로 시작되어 단순하지만 성격이 뚜렷한 변주들이 이어진다. 1변주에서는 주제를 연주하는 현악기 위에 클라리넷이 대위적으로 주제를 변주한다. 2변주에서는 현악기의 셋잇단음표에 클라리넷이 선율을 추가한다. 3변주에서는 비올라의 우울한 솔로가 인상적이다. 3변주에서 잠시 쉬었던 클라리넷은 4변주에서 주제를 화려하게, 빠른 속도로 펼쳐낸다. 그렇지만 5변주에서의 클라리넷은 분위기를 일신하여 서정적인 아다지오를 이끌어간다. 6변주(혹은 코다)에서는 주제선율이 다시금 명료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활기차게 전곡이 마무리된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이 솔리스티 아퀼라니 연주)

체코의 민속적 요소와 형식상의 완성도가 돋보이는 걸작

드보르작 : 피아노 5중주 제2번 A장조 작품번호 81, 2악장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은 조국 체코의 민족정신과 음악적 이디엄에 입각한 작품들을 썼지만 음악 형식적인 면에서는 명백하게 독일식 전통에 빚지고 있었다. 드보르작은 두 곡의 피아노 5중주곡을 남겼는데, 스스로 미숙하다고 생각한 1번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 반면 1887년 작곡된 2번은 독일의 슈만과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곡에서 자극을 받은 것이자 그에 전혀 못지않은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악기 편성은 슈만, 브람스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현악 4중주 구성이다. 이 곡이 독보적인 이유는 특히 2악장과 3악장에 체코 민속음악적인 선율을 이용하면서 형식적으로도 높은 완성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2악장을 연주한다.

2악장은 ‘안단테 콘 모토’의 ‘둠카’다. 둠카란 원래 우크라이나 지방에 전승되어 온 슬라브 계열 민요의 일종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둠카’라는 용어 자체가 ‘애가(哀歌)’라는 뜻의 보헤미아 말일만큼 체코 사람들에게는 자기네 음악처럼 체화되어 있다. 대개 템포가 느린 단조의 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빠르고 열정적인 부분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 곡에서도 마찬가지여서 2악장은 일단 애조를 띤 느린 가락이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비바체의 격정적인 선율이 등장하여 과연 둠카답게 전개된다. 그러다가 다시 앞부분의 애상어린 성격으로 회귀하는 3부 형식을 갖고 있는 악장이다.

드보르작은 ‘둠카’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3년 후인 1891년에 완성된 유명한 피아노 3중주곡 e단조 작품번호 90은 아예 ‘둠키’라고 불린다. 둠키는 둠카의 복수형이다.

 

드보르작 피아노 5중주 제2번 A장조
(피아노_ 폴리나 레스첸코, 바이올린_ 재닌 얀센, 보리스 브로프친, 비올라_ 줄리안 라츨린, 첼로_ 미샤 마이스키)

이국적이고 흥겨운 분위기가 가득한 악상

브람스 : 피아노 4중주 제1번 g단조 작품번호 25, 4악장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베토벤의 빈 고전주의를 계승한 독일의 보수파 낭만주의 전통에서 마지막 거장으로 불린다. 바그너로 대표되는 혁신적인 후기 낭만주의자들과 달리 전통적인 양식을 지키고자 노력했고, 거의 모든 작품에서 신중한 퇴고를 거듭하여 형식적인 완결성을 추구하곤 했다.

브람스는 다양한 형태의 실내악곡을 다수 작곡했는데,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형태인 피아노 4중주도 3곡이나 남겼다. 악기 편성은 예상할 수 있듯이 피아노와 현악 3중주의 구성이다. 이중 1번은 1861년(28세)에 초연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여러 해 전부터 구상되어 손질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브람스 젊은 날의 산물이다.

12음 기법의 창시자로 유명한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특이하게도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나 지난 1937년에 대선배의 피아노 4중주 1번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했다. 이 편곡판은 오늘날에도 종종 연주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데, 쇤베르크에게 그 동기를 가장 강력하게 제공한 것은 이번에 연주될 4악장인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음색과 풍부한 음량이 어울릴 법한 눈부신 악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는 이 곡을 작곡할 때에도 조언을 얻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을 위시하여 동유럽 출신의 친구들이 많았다. 또한 브람스가 지낸 빈이라는 도시 자체가 서유럽과 동유럽의 관문이라 할 정도로 헝가리나 체코 출신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4악장이 주목 받는 것은 그 영향으로 동유럽 풍,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집시 스타일의 이국적 분위기를 잘 살렸기 때문이다. 브람스는 4악장 악보에 ‘치고이네르 풍의 론도’라고 직접 적어놓았다. 그 이색적이고 흥겨운 분위기가 브람스의 작품 중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뜨겁고 열광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간다.

 

브람스 피아노 4중주 제1번 g단조
(피아노_ 조성진, 바이올린_ 세르게이 오스트롭스키, 비올라_ 길라드 카니, 첼로_ 쯔비 플레서)

글. 유형종(음악평론가)
사진제공.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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