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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읽는 세계 연극 ⑥ 러시아 편
안톤 체홉 <갈매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붉은광장의 전경. 러시아정교회 성당인 성 바실리 성당을 중심으로 사진의 오른쪽에 크렘린 성의 스파스카야 탑이 보인다.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는 동방정교회의 수용, 몽골의 침략, 표트르 대제의 급격한 서구화 추진 등으로 다채로운 문화가 혼합된,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정체성은 제정시대를 거치는 동안 문학, 고전음악, 발레, 오페라 등 각 분야에서 탁월함으로 승화되어 세계 문화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과 순백의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의 설원,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을 품고 있는 나라, 러시아.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광활한 대륙과 변화무쌍한 기후 못지않게 러시아의 역사 또한 격동의 세월로 점철되어 왔다. 눈부신 고전예술을 꽃피웠던 제정 시대와 전 세계를 뒤흔든 두 차례의 혁명, 그리고 ‘철의 장막’이라 불리던 냉전 시기와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쳐 소비에트 연방 해체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에 길이 남을 극적인 순간들이 러시아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장식해왔다.

지리와 역사 못지않게, 러시아의 예술이 세계 문화사에 끼친 영향 또한 어마어마하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등 걸출한 천재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면서 러시아는 세계 문학과 고전음악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왔으며, 볼쇼이/마린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발레와 오페라 역시 극장예술이 발전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눈부신 러시아 무대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극인데, 특히 20세기 초 모스크바 예술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을 중심으로 발전한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은 이후 수십 년간 세계 연극에 깊고도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세계 연극사의 흐름을 바꾼 이 위대한 사건은 1897년 어느 여름날, 스타니슬랍스키(Станиславский)와 네미로비치-단첸코(Немирович-Данченко)라는 두 연출가가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하던 순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연극사를 바꾼 18시간의 회담

스타니슬랍스키와 네미로비치-단첸코의 장장 18시간에 걸친 회담은 연극사에서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두 사람은 기존의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연극, 삶과 인간의 ‘내적 진실’에 충실한 연극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모스크바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시작한 이 회담은 다음날 아침, 스타니슬랍스키의 별장에서 비로소 끝이 났다.

후에 네미로비치-단첸코는 이 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했다는 점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을 모아 새로운 극단을 만든 뒤, 모스크바 근처의 한 시골헛간에서 집중적인 연기 훈련을 시작했다. 러시아 연극, 나아가 세계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모스크바 예술극장과 그 유명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일명 ‘메소드 연기훈련’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극장 재정과 작품 선정을 맡게 된 네미로비치-단첸코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성패를 가를 첫 번째 시즌의 레퍼토리를 신중히 골랐고, 잘 알고 지내던 작가 체홉(Чехов)에게 편지를 보내 <갈매기>(Чайка)의 상연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체홉은 그의 요청을 여러 차례 거절했는데, 바로 2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있었던 <갈매기> 초연의 쓰라린 기억 때문이었다.

© Popperfoto / Getty Images (출처 : British Library)
스타니슬랍스키와 모스크바 예술극장 단원들에게 희곡 <갈매기>를 읽어주는 체홉. 1899년 또는 1900년으로 보인다.
안경을 쓰고 책을 든 사람이 <갈매기>의 작가 안톤 체홉이며, 바로 옆에 턱을 괸 사람이 <갈매기>의 연출을 맡은 스타니슬랍스키이다.
사진의 왼쪽 제일 끝에 의자를 잡고 서 있는 이가 바로 네미로비치-단첸코이다.

처참한 실패작에서 유례없는 성공작으로

2년 전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이루어진 <갈매기>의 초연은 말 그대로 처참한 실패였다. 관객은 새로운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자 했던 작가 체홉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시종일관 냉소를 지으며 혀를 찼고, 극의 중간에 막이 내려가도 박수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 비극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체홉은 큰 충격을 받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극장을 나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페테르부르크를 떠났다. 이때 네미로비치-단첸코에게 보낸 편지에서 체홉은 자신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앞으로 백 살까지 산다 해도 절대 연극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모스크바 예술극장 첫 번째 시즌의 마지막 레퍼토리로 오른 <갈매기> 초연은 그야말로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결핵으로 얄타에서 요양 중이던 체홉에게 또 한 번의 실패는 치명타일 수 있었고, 갓 문을 연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운명 또한 이 공연의 성패에 달려 있었다. 배우들은 신경 안정제를 먹으며 무대 위에 섰고 연출을 맡은 스타니슬랍스키는 다리 경련을 일으켰으며, 네미로비치-단첸코는 무대 뒤를 초조하게 오가고 있었다.

1막이 끝나고 정적과 같은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고요히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고, 배우들이 죽음과 같은 절망에 빠지려 하던 바로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극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배우들은 울며 흐느끼며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무대 위로 불려나갔고, 흥분한 관객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박수와 갈채를 보내며 끊임없이 배우와 작가의 이름을 불러댔다.

네미로비치-단첸코는 급히 체홉에게 전보를 보내 짤막하게 보고했다.

“대성공, 끝없는 박수갈채, 작가에게 전보를 치라는 관객의 요청이 있었음. 행복해 미칠 것 같음. 상세한 것은 나중에.”

이처럼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갈매기> 초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극이라 해도 좋을 만큼 드라마틱한 사건이었고, 지금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무대 장막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갈매기’ 엠블럼이 그날의 기억을 무대 위로 소환하고 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전경. 보통의 화려한 극장과는 달리 소박한 외관에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 극장의 전통이 엿보인다.
내부 또한 장식이 없고 간소하다. 객석은 1,183석에 이르지만 3층 좌석 제일 뒷자리에서도 무대가 잘 보이는 매우 이상적인 연극 공연장이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연극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연극

체홉의 <갈매기>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더불어 가장 자주, 가장 오랫동안 공연되는 연극계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특히 <갈매기>는 관객뿐만 아니라 연출이나 배우, 스태프 등 연극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이 작품 자체가 바로 ‘연극에 대한’, 그리고 ‘연극을 위한’ 연극이기 때문이다.

일단 <갈매기>에는 성공한 작가와 유명 여배우, 그리고 작가 지망생과 배우 지망생 등 연극에 관련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극중극’의 형식으로 작품 안에서 직접 연극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며, 때로는 연극은 어떠해야 한다는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팽팽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의 인물들은 ‘진짜 살아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껍질뿐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바로 연극에 대한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막이 오르면, 달빛이 비치는 호숫가에서 연극 준비가 한창이다. 작가 지망생인 코스차가 쓴 희곡을 그의 연인이자 배우 지망생인 니나가 연기하는 무대로, 관객 중에는 이미 유명한 여배우로 명성이 자자한 코스차의 어머니 아르카지나와 그녀의 연인인 잘나가는 작가 트리고린도 포함되어 있다. 이윽고 극중극이 시작되면 호수를 무대배경으로 한 채, 하얀 옷으로 온몸을 감싼 니나가 등장해 시적인 독백을 읊조린다.

드라마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감정보다는 사유를 자극하는 코스차의 난해한 연극에 아르카지나를 비롯한 극중 관객들은 무관심 혹은 조롱의 태도를 보이고, 모욕감을 느낀 코스차는 공연 도중 막을 내려버린다. 여배우로서의 명성과 오만에 찌들어 있는 아르카지나는 아들의 새로운 연극을 비웃고 조롱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트리고린은 아예 남의 연극 자체에 관심이 없다.

<갈매기>는 아르카지나의 오빠인 소린의 영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 영지의 관리인인 샤므라예프의 딸 마샤는 연극보다도 짝사랑하는 코스차의 모습을 쫓는다. 가난한 학교 교사로 마샤를 짝사랑하는 메드베젠코는 연극의 가치마저 돈이나 수치로 환산하려 든다. 한편 샤므라예프와 그의 아내 폴리나는 연극이 시작되든 말든 상관없이 그들만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1막에서 연극을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후에 보이는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연극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 그들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날개 꺾인 갈매기의 아름다운 비상

다른 인물들의 연극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가 시종일관 바뀌지 않는 것과는 달리, <갈매기>에는 매우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코스차의 극중극을 연기했던 니나이다. 1막에서 니나는 밝고 사랑스러운 소녀지만, 연극과 삶에 대한 태도는 아르카지나처럼 속물적이다. 그저 모스크바로 가서 아르카지나처럼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지닌 그녀에게 코스차의 극중극은 어렵고 따분할 따름이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여배우가 되어 돌아온 4막의 니나는 예전의 니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토록 원하던 여배우가 되었으나 니나의 모습은 화려하기는커녕 초라하기 짝이 없다. 동경하던 트리고린으로부터 버림받는 실연의 아픔을 겪고, 지방 극단을 전전하는 삼류 배우가 되어 돌아온 그녀는 1막에서 보여주었던 맑고 반짝이는 모습 대신, 삶에 지치고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외적으로 늙고 초라해진 니나의 내면은 오히려 단단하고 깊어져 있다. “난 배우에요”하고 코스차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니나의 어조에는 1막에서 막연하게 동경했던 ‘배우’의 겉모습이 아니라 진짜 예술가로서의 신념이 묻어난다.

니나 : 난… 갈매기예요. 아니, 그게 아니야. 난 여배우에요. … 이제 난 예전과 달라요. 나는 이제 진정한 배우에요. 나는 희열 속에 연기를 즐기면서 무대에 도취되고,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껴요. 난 지금은 여기서 머무는 동안, 내내 걸어 다녀요. 걸으면서 생각해요. 나의 정신력이 하루하루 자라나는 것을 생각하고 느껴요. 나는 이제 알아요. 그리고 이해해요. 코스차,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건 소설을 쓰건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라. 내가 동경하던 그 눈부신 명성이 아니라. 참는 능력이라는 걸 이젠 알아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갖는 거야.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지 않아. 그리고 나의 사명을 생각할 때는 인생이 두렵지 않아.

안톤 체홉, <체호프 희곡선>, 박현섭 역, 을유출판사, 2012.

이러한 니나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극중극의 대사이다.

“사람들, 사자들, 독수리, 뇌조들, 뿔 달린 사슴들, 거위, 거미, 물속에 살던 말 없는 물고기들, 불가사리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들, 한 마디로 모든 생명, 모든 생명, 모든 생명들이 슬픈 순환을 마치고 사라져갔노라…”

1막에서 들려주었던 극중극과 똑같은 대사이지만, 4막에서 니나가 다시 읊조리는 극중극의 대사는 1막에서와는 전혀 다른 무게와 울림을 가지고 다가온다. 인생의 처절한 실패와 고통을 경험한 뒤 돌아온 배우가 그 모든 인생의 무게를 담아 읊조리는 담담한 대사는 어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도 절절한 언어로 다가오는 것이다.

니나가 코스차 앞에서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다시 극중극의 대사를 읊조릴 때, 바로 옆방에서는 아르카지나와 트리고린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로또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쪽에서 사람들이 돈을 걸고 게임을 즐기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무명의 배우가 실패한 작가 앞에서 슬프고 아름다운 연극 대사를 읊고 있는 상황. 이 선명한 대비를 통해 체홉은 다시 한 번,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껍질뿐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니나의 독백이라는 연극적 장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니나는 스스로를 갈매기라고 말한다. 비록 세상의 모진 풍파 속에 두 날개는 꺾였지만 연극을 향한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 니나는 무대를 향해 날아가는 아름다운 갈매기의 비상을 보여준다. 마치 지금도 여전히 모스크바 예술극장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갈매기의 날개처럼.

1889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드라마틱하게 성공을 거둔 연극 <갈매기>는 이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상징 이미지(오른쪽 엠블럼)가 되었고,
지금도 극장 무대 장막(왼쪽 사진)에 수놓아져 그날의 기억을 무대 위로 소환하고 있다. (출처 : 모스크바 예술극장 인스타그램)

글. 김주연(연극칼럼니스트)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월간 <객석>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 시대의 극작가』(공저)를 출간했다. 연극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연극 칼럼니스트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작으로 읽는 세계연극’ 시리즈는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국가별로 한 편씩 골라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가 희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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