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서 로마까지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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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고양시교향악단 콘체르토 시리즈 4

지난 4월부터 클래식음악 팬들을 독일, 체코, 러시아 한복판으로 데려다주었던 고양시교향악단(지휘 카를로 팔레스키)의 콘체르토 시리즈. 이제 다음 목적지는 이탈리아다. 10월 5일(토) 오후 5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을 시작으로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 양인모 협연의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 중 「로마의 소나무」와 「로마의 축제」를 차례로 들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 류태형 음악평론가의 ‘2019 콘체르토 시리즈 4’ 프로그램 노트를 미리 열어 이탈리아 음악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다이내믹 클래식’이라는 모토 아래 젊고 실력 있는 협연자들과의 생동감 있는 하모니로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고양시교향악단과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 (사진 하경준)

가혹한 운명의 장난, 그 시작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1282년 프랑스 폭정에 항거하는 시칠리아 섬 폭동에 휘말린 비극적 사랑을 노래한다. 가공할 만큼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 기다리고 있는 오페라다.

시칠리아 총독인 귀도 디 몽포르테는 시칠리아 애국 청년 아리고와 자신의 관계를 모르는 채 정치노선을 달리하면서 대립한다. 사실 두 사람은 부자관계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지배층이며, 아들은 독립투사들을 이끄는 혁명적인 인물인 것이다. 과거 몽포르테가 버린 시칠리아 여인이 죽기 전에 편지를 남겨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리고라고 밝힌다.

부자관계를 알게 된 아리고 또한 진퇴양난에 빠진다. 시칠리아의 공녀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프랑스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죽은 그녀의 오빠를 위해)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총독을 시해한다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 뺨치는 설정이다. 아리고와 엘레나의 결혼식을 앞두고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가운데, 시칠리아인들이 복수를 외치며 달려들어 총독과 프랑스인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피날레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이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은 베르디 오페라의 서곡들 중 가장 길이가 길면서도 빼어난 곡이다. 극중의 여러 장면과 아리아들에서 흐르는 선율을 모은 것으로 독립된 관현악으로 손색이 없다.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

전설의 연주자를 대표하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작곡가 로시니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나는 세 번 울었다. 첫 번째는 내가 작곡한 오페라가 실패했을 때, 두 번째는 선상 파티에서 송로버섯을 넣고 요리한 칠면조 요리를 물에 빠뜨렸을 때, 그리고 세 번째는 파가니니가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였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모든 시대의 음악가를 통틀어 가장 환상적인 연주자 가운데 하나였다. ‘비르투오소’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던 파가니니를 두고 베를리오즈는 “천재이며 타이탄”이라고 추켜세웠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는 루머가 돌 만큼 파가니니는 그 자체로 전설적인 존재였다.

10월 5일(토) 고양시교향악단과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할 양인모. 2015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1위를 차지한 양인모는 ‘인모니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중 오늘날 최소한 6곡이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파가니니 당대에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한 곡만이 유명해서 파가니니의 다른 협주곡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오늘날까지도 파가니니를 대표하고,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파가니니가 이 곡을 언제 작곡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파가니니가 29세 때인 1811년에 작곡되었다는 설이다. 이에 반해 1820년에 작곡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협주곡의 느린 악장이 1813~1814년 이탈리아 배우 데마리니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내세우는 주장이다.

원래 E♭장조로 작곡됐지만, 바이올린 연주 기법이 어려워 반음 내린 D장조로 연주한다. 전 3악장 가운데 1악장은 화려한 오케스트라 서주로 시작한다.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힘차게 연주하면 뒤이어 제1바이올린이 모티프를 제시하고 독주 바이올린이 이 동기를 사용해 제1주제를 제시한다. 폭넓은 주제 선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을 들어보면 마치 이탈리아 오페라의 여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1악장 마지막의 긴 카덴차에서 바이올린은 진기명기를 보여준다. 2악장은 서정적이며 오페라 벨칸토 스타일의 선율이 흐른다. 감정이 흘러넘치고 부드러운 선율 속에서 집시풍의 노래는 애수를 띠고 있다. 3악장의 론도에서는 스타카토 주법 등 최대한의 기교를 통해 쾌활한 분위기를 매혹적인 감동으로 이어간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양인모, 롱우드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로마 3부작 최고의 인기작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작곡한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는 「로마의 분수」와 더불어 로마 3부작이라 일컬어진다. 조국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나라지만 레스피기는 볼로냐 음악원에서 독일 교향악에 정통한 루이지 토르토와 주세페 마르투치에게 배웠다. 1900년에서 1903년 사이에는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관현악의 대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베를린에서는 막스 브루흐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로마의 소나무」는 로마 3부작 중 최고의 인기작이다. 로마의 명승지에 서 있는 소나무들을 모티브로 삼아, 그 주변의 정경을 그리기도 하고 그와 관련된 고대 로마의 환영을 좇기도 한다.

첫 곡은 1곡 ‘보르게제 장의 소나무’다. 로마 시내의 중심부에 있는 16세기식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들어보면 눈부시게 화려하다. 분산화음과 트릴과 글리산도가 어지러이 교차하며 떠들썩하면서도 상큼한 느낌을 자아낸다. 저음악기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전체가 화사한 색채와 유쾌한 활기로 넘친다.

2곡 ‘카타콤베 부근의 소나무’는 고대 로마의 기독교 박해기 때 지하의 비밀 분묘 겸 예배당에서 벌어지는 교인들의 집회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바탕으로 경건하고 신비로운 종교 의식의 광경이 느릿하고 묵직하게 펼쳐진다. 점차 고조되었다가 다시 가라앉는 흐름 속에서 한 차례 크게 떠올라 장엄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중간부가 압권이다.

3곡 ‘자니콜로의 소나무’는 바티칸의 남쪽 자니콜로 언덕을 배경으로 보름달이 뜨고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밤의 정경을 묘사했다. 피아노의 카덴차 풍 독주에 이어 약음기를 단 현이 아스라한 음의 커튼을 드리우면, 그 위로 클라리넷, 오보에, 트럼펫 등의 관악기들이 우수에 젖은 선율을 연주한다. 드뷔시 풍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4곡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는 기원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도로 위를 행진하는 고대 로마군의 당당한 위용을 지켜보는 환상을 감격적으로 그린다.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군대의 발소리가 절묘하게 포착돼 있다.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가는 흐름과 용맹스럽게 울러 퍼지는 팡파르, 장렬한 마무리가 눈부시다. 현실에 존재하는 소나무를 모티브로 차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 고대 로마의 영광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디마 슬로보데니우크 지휘, 갈리시아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역사적인 축제들을 표현한

레스피기 「로마의 축제」

「로마의 축제」는 3부작 중 시기적으로 가장 나중 작품이다. 「로마의 소나무」를 완성하고 4년이 지난 1928년에 썼다. 그동안 레스피기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교수 및 원장으로 있으면서 과거 음악을 연구하고 「옛 춤곡과 아리아」, 「새」 등을 쓰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교향시 「로마의 축제」는 앞의 두 작품 「로마의 소나무」와 「로마의 분수」가 로마의 건축물이나 자연을 대상으로 한 데 비해서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 현대의 순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네 개의 축제를 다룬다. 축제의 여러 양상을 통해 인간을 표현한다. 작곡의 캔버스도 훨씬 크고, 색채감도 풍성하다.

1곡 ‘치르첸세스’는 로마의 대 원형극장에 사람들이 들어차고 거행한 로마 제국의 축제다. 폭군 네로가 그리스도 교도를 맹수와 싸우게 하곤 했다. 관중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연상시키는 관현악의 총주로 시작한다. 철문이 열리고 야수의 울부짖음이 섞여 들어오고 관중들은 일어선다. 순교자들의 노래는 고조됐다가 떠들썩한 소리 속에 묻힌다.

2곡은 ‘50년제’(Il Giubileo)다. 50년마다 기독교에서 거행하는 법왕의 대사제를 말하고 로마를 방문하는 순례자의 모습을 그린다. 몬테 마리오 정상에 이르면 갈망하던 성스러운 도시가 한눈에 보이고 “로마! 로마다!”하고 기쁨의 찬가가 터져온다. 교회의 종소리가 이에 화답하며 울린다. 피날레에선 종소리와 호른의 연주로 끝맺는다.

3곡은 ‘10월제’(L’ottobrata)다. 포도의 수확을 축하하는 로마의 축제를 묘사했다. 사냥의 뿔피리를 연상시키는 호른의 선율로 시작한다. 목가적인 포도 축제의 모습을 나타낸 뒤 현의 반주를 타고 만돌린이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독주 바이올린이 스페인 풍 사랑 노래를 부른다. 축제의 밤은 깊어가고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잦아든다.

4곡은 ‘주현제’(La Befana)다. 로마 나보나 광장의 소란한 모습을 표현한다. 시골 분위기, 살타렐로의 카덴차, 손풍금 가락, 호객꾼의 소리, 주정뱅이들의 노래 등등이 열띤 목관의 리듬으로 그려진다. 농민의 노래, 살타렐로 리듬을 따라 유랑극단, 상인 목소리, 술주정 소리 등을 관현악법으로 싱싱하게 묘사했다.

 

레스피기 「로마의 축제」 (로린 마젤 지휘, 피츠버그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글. 류태형(음악평론가,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이 기사는 2019 고양시교향악단 콘체르토 시리즈 프로그램 북의 원고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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