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정권의 폭력이 남긴 쓰라린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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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와 피노체트 군사 정권

남아메리카 서남쪽,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라 칠레의 역사는 스페인의 원주민 정복, 긴 독립 투쟁, 군사 정권에 의한 독재와 압박 등 굴곡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특히 1973년 쿠데타 이후 17년간 이어진 피노체트 군사 정권의 무자비한 공포 정치는 수많은 칠레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해외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평생에 걸친 기나긴 망명생활을 하게 된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 <과부들>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죽음과 소녀>는 칠레 현대사의 정치적 아픔과 민중의 고통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자 진솔한 기록과도 같다.

죄책감, 슬픔, 책임감이 공존하는 글쓰기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모네다 궁을 습격했다. 1970년, 칠레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사회주의 개혁가 아옌데 대통령은 칠레 국민에게 남기는 마지막 연설을 라디오를 통해 내보낸 뒤, 측근들과 장렬히 항전하다 사망했다.

당시 아옌데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문화언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1942~ )은 때마침 다른 일로 대통령 궁에 있지 않아 대학살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부의 잇따른 위협과 압력 속에 조국 칠레를 떠나야 했고, 이로부터 기나긴 망명생활이 시작 되었다.

한편, 쿠데타로 수립된 피노체트 군사 정권은 이후 17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칠레 민주주의를 압살시켰다. 공식 보고된 숫자로만 약 3,200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했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수만 명이 감금 및 고문으로 고통 받았으며,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도 1,000여 명이나 된다. 그럼에도 민주화를 향한 칠레 국민들의 저항과 시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1988년 대통령 집권 연장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패배한 피노체트는 1990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고통스런 경험 속에서 써 내려간 도르프만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조국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동료들의 죽음 및 아픔을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누군가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공존하고 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 쿠데타 당시 공군 비행기의 폭격을 받은 모네다 궁의 모습 (출처 : WIKIMEDIA COMMONS)

과거의 폭력을 마주한 현재의 갈등

도르프만의 대표작 <죽음과 소녀>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기억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파울리나는 군사 정권 시절 군부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어느 날, 자동차 고장으로 길에 서 있던 남편 헤라르도를 차에 태워준 의사 로베르토 미란다가 헤라르도와 함께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제목 ‘죽음과 소녀’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에서 이름을 땄다. 고문할 때마다 이 곡을 틀어 놓았던 취조관 때문에 파울리나는 아직도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 눈이 가려진 채 고문을 당한 파울리나는 오로지 가해자의 목소리만 기억할 수 있었고,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오는 로베르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가 자신을 고문했던 의사라 확신하게 된다.

상황을 틈타 파울리나는 로베르토를 결박한 채 위협을 가하고, 헤라르도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아내 앞에서 당황한다. 집요하게 고백을 강요하는 파울리나 앞에서 로베르토는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지만, 파울리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조금씩 나오면서 헤라르도 역시 로베르토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과거 군부에 맞서 싸웠고 현재는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헤라르도는 아내의 고통과 로베르토의 인권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렇듯 <죽음과 소녀>는 ‘과거’의 폭력과 그 기억을 둘러싼 ‘현재’의 고민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희곡의 후반부에 이르면 로베르토가 그 의사임이 거의 확실시 되지만, 도르프만은 100%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파울리나가 로베르토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거대한 거울을 내려 객석에 비춤으로써, 이야기의 결말을 열린 상태로 놓아둔 채, 이 비극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로베르또 그래 누군가 너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고 그래서 이제 너는 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고
내일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또 그러겠지. 거듭해서 거듭 거듭. 나는 애들이 있어. 아들 둘에 딸 하나야.
그 애들이 너를 찾을 때까지 앞으로 십오 년을 떠돌아다니게 해야 하나? 그러고 나서-

빠울리나 아홉.

로베르또 오, 빠울리나.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어?

빠울리나 그런데 왜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항상 나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 거지, 왜 뭔가를 양보해야 할 때가 되면 양보를 해야 하는 건 우리여야 하지, 왜 자기 혀를 깨물어야 하는 게 나여야 하지, 왜? 자, 이번은 아냐.
이번만은 난 나 자신을, 내게 필요한 것을 생각할 거야. 한 사건, 단 한 사건에만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라도 좋을 텐데. 그런다고 우리가 잃을 게 뭐가 있지? 그들 중 하나를 죽인다고 우리가 뭘 잃지? 우리가 뭘 잃지? 우리가 뭘 잃지?
(두 사람은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짐에 따라 제 자리에서 굳어진다. 빠울리나와 로베르또,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거울에 의해 가려지는데, 이 거울은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죽음과 소녀> 중, 아리엘 도르프만 작, 김명환/김엘리사 역, 창비, 2007년

진실을 위한 추궁, 그리고 용서

1991년 영국 런던의 로열 코트 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연극 <죽음과 소녀>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가지가 넘는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 수많은 나라에서 자신의 언어와 배우들로 이 작품을 무대화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1994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희곡을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를 제작해 이 작품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원제는 희곡의 제목을 그대로 딴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배우의 이름을 딴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였다).

연극 무대를 염두에 두고 쓰인 원작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연극처럼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압축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파울리나의 집 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오로지 세 인물의 갈등과 관계만으로 극이 진행되기에 극적 긴장과 밀도감도 상당히 높다. 원작의 틀과 대사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희곡이 모든 극적 갈등의 클라이맥스에서 결말을 확실하게 짓지 않은 채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것과 달리, 영화는 상대적으로 매우 선명한 결말을 제시한다. 파울리나의 온갖 협박 앞에서도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던 로베르토는 절벽 앞에 세워진 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폭력과 광기의 역사 속에서 결국 로베르토 역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된 파울리나는 마지막 순간 로베르토를 풀어주고, 자신의 길고 고통스러웠던 기억과도 화해한다. 그리하여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남편 헤라르도와 함께 음악회에 간 파울리나의 모습을 비춰준다. 무대 위에서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흐르고 있고, 이제는 그 음악에서 도망치지 않게 된 파울리나가 고개를 들어 다른 쪽에 앉아 있는 로베르토를 바라본 뒤 다시 무대를 똑바로 마주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를 바탕으로 1994년 제작된 동명 영화의 트레일러
ⓒ Capitol Films & Channel Four Films

‘괴물’을 마주한 인간의 치열한 심리전

용서를 통한 자기 자신과의 화해라는 선명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연극에서는 도르프만이 만들어 놓은 열린 엔딩을 더욱 다채로운 방식으로 제시하거나 아예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등 연출가의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2012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죽음과 소녀>(박지혜 번역·연출, 손상규·양조아·양종욱 출연)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압축과 단순화 그리고 강조를 통해 원작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매우 효과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일단 원작 텍스트를 과감히 잘라내 원작의 8개 장면 중 3장면만 선별해 압축했다. 애초부터 이 작품의 목적은 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를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텍스트를 이용해 새로운 의미와 질문을 만들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원작의 몇 장면만을 발췌한 뒤 단순화와 강조를 통해 자신들만의 스토리텔링을 펼쳐낸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원작 <죽음과 소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로베르토가 정말 그 의사가 맞는지, 파울리나는 제정신인지 아닌지, 헤라르도는 과연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 이들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양손프로젝트의 <죽음과 소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괴물’을 마주한 상황에서, 상대와 똑같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갈등하는 인간의 고민과 선택이다. 극 중 로베르토가 진짜 고문을 했던 의사인지 아닌지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다만 파울리나와 헤라르도로 하여금 심리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때문에 무대 위에서 헤라르도와 파울리나는 각기 하나의 구체적인 ‘인물’로 존재하고 연기하지만, 로베르토는 하나의 인물이라기보다는 ‘효과’처럼 존재한다. 파울리나와 헤라르도는 텅 빈 의자를 향해 말을 쏟아내고, 로베르토 역을 맡은 배우는 의자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들의 귓가에 대고 대사를 한다. 때로 그 대사는 마이크로 증폭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실제 로베르토의 말이 아니라 파울리나와 헤라르도의 마음속에서 왜곡된 채 들리는 대사임을 보여주는 장치다.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죽음과 소녀> 가운데 한 장면(2012.11.2~11.17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원작의 텍스트를 이용해 새로운 의미와 질문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복수의 대상과 의미에 대한 고찰

독재 정권의 핍박과 그로 인한 쓰라린 상처는 비단 칠레뿐만 아니라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겪은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현상이다. 부당한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는 그것이 아무리 아프고 쓰라린 기억이라 하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잊혀서도 안 된다.

피노체트 군부에 의해 조국과 친구들이 무너져 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평생 동안 깊은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았던 작가 도르프만은 <죽음과 소녀>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고통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비록 아무리 아프고 쓰라리다 할지라도 그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또한 그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 역시 복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은 여운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글.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 · 정유나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연극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평론가와 드라마투르그,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며 강단에 서고 있다.
‘연극으로 떠나는 역사 산책’은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즉,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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