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람음악당 찾는 러시아 음악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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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러시아 시즌 in 한국

2020년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 30주년을 맞아 러시아 정부가 직접 추진하는 ‘러시아 시즌’(Russian Seasons)이 내년에 한국에서 열린다. 러시아의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1년 내내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일본(2017), 이탈리아(2018), 독일(2019),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2020)에 이어 한국이 다섯 번째다. 이번에는 특히 러시아의 거장 유리 바슈메트가 고양아람누리를 방문할 예정으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의 때’는 바로 러시아에서 살던 시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다시 유행이 시작된 단어가 ‘꼰대’다. 사사건건 남을 지적하고 자신의 기준이나 눈높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뜻인데, 의미만큼이나 어감도 좋지 않다. 사전적으로도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 ‘선생님’을 이르는 학생들의 은어라고 한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이 단어가 프랑스어 ‘백작’(comte)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점잖은 백작님이 언제부터 고집스럽고 말 안 통하는 꼰대 아저씨로 변해버렸는지 모르나, 그들이 많이 쓰는 문장인 “나 때는 말이야…”를 커피의 한 종류인 ‘라떼’로 순화시키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서 꼰대도 구제받을 방법이 있는 듯해 다행스런 마음이다.

결코 꼰대가 아니라고 자신하지만, 만약 내가 백작처럼 점잖게 ‘라떼’를 마시면서 다른 이들과 나눠야 할 주제가 있다면 러시아에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때’도 꽤 오래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1986년 이후 소련 정권이 추진하였던 정책 노선. 국내적으로는 자유민주화, 외교적으로는 긴장 완화를 기조로 했다) 직후인 1991년 늦여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절대 권력이 끝나갈 때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의 오디션을 위해 처음 러시아 땅을 밟았고, 그로부터 반년 후인 1992년 초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내가 러시아라는 나라와 인연을 맺은 지도 내년이면 30년이다.

선배와 경험자가 없던 시절, 말과 글이 설던 타국에서 고생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데, 초기 유학생 중 음악 전공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지금까지도 내 경력과 러시아는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

내게 많은 영광의 순간과 소중한 경험, 그곳이 아니면 배우지 못할 지식을 전해주었음은 물론이요, 나의 인생관에까지 영향을 준 러시아의 문화와 음악은 오래 전부터 한국인들 모두에게 친숙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왔다.

2018년 러시아 시즌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2021년 한국을 찾아오는 러시아 시즌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참으로 값진 인연도 올해로 30년째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 시간 동안 대한민국과 러시아가 겪어야 했던 격동의 희로애락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지만,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흘러가는 문화의 힘, 그리고 그 힘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믿음이 아닐까.

나라의 크기가 다르고 민족의 모습도 다르지만 삶의 또 다른 모습인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별한 친밀감으로 일상 속 문화생활을 실천해 나간다는 점에서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시각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뜻깊은 해 30주년을 맞아 러시아 문화부가 러시아 문화예술을 1년간 폭넓게 선보이는 ‘러시아 시즌’(Russian Seasons)을 2021년 한국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2018년 6월에 한-러 정상은 양국 수교 30주년(1990.9.30. 외교 관계 수립)을 맞이하는 2020년을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했고, 2021년까지 이어지는 갖가지 문화 행사와 페스티벌은 이의 일환이 될 것이다.

‘러시아 시즌’은 푸틴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된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2017년 일본, 2018년 이탈리아, 2019년 독일, 2020년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에서는 러시아 국립 박물관 특별 전시회, 러시아 영화 축제, 러시아 스타들의 콘서트, 청소년 공연, 현대예술·전통문화·사진·패션·문화산업·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뉴 러시아 스테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유리 바슈메트

아람음악당에서 만나게 될 비올라의 전설

내년으로 예정된 한국에서의 ‘러시아 시즌’을 결코 잊지 못하게 만들어줄 대가는 비올리스트이자 지휘자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유리 바슈메트다.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도 2021년 6월과 10월 총 두 차례에 걸쳐 바슈메트를 만날 수 있는데, 각각 뉴 러시아 스테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6월 4일),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10월 1일, 이하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 합을 맞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주자들도 등장하는데, 다양한 레퍼토리와 뛰어난 기획력으로 온·오프라인 양쪽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재혁(6월과 10월), 첼리스트 송영훈(6월)이 협연자로 참가한다.

바슈메트는 1953년 러시아의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 리비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스크바 음악원을 거쳐 1976년 뮌헨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그의 국제적인 경력은 시작됐다.

이후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 로열콘세르트허바우, 보스턴심포니, 시카고심포니, 몬트리올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등 세계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지휘를 맡기도 했다.

2013년 모스크바에서는 바슈메트의 60세를 축하하는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발레리 게르기예프, 안네 소피 무터, 막심 벤게로프, 데니스 마추예프 등 저명한 음악가들이 축하 공연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또 지금까지 55곡 이상의 비올라 협주곡이 바슈메트에게 헌정됐는데, 알프레트 슈니트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알렉산더 차이콥스키, 알렉산더 라스카토프 등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슈메트는 자신을 위해 작곡된 기야 칸첼리의 「스틱스」(Styx), 존 태브너의 「몰약 운반사」(The Myrth Bearer), 마크 앤서니 터니지의 「열린 땅에서」(On Opened Ground)를 세계 초연했다.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의 설립자인 바슈메트는 1992년부터 이 앙상블과 전 세계에서 지휘 및 협연 활동을 계속해 왔으며, 그들의 연주는 모스크바, 암스테르담, 파리, 도쿄, 뉴욕, 런던 BBC 프롬스 등에서 격찬을 받았다.

실내악 분야에서 바슈메트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기돈 크레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마르타 아르헤리치, 막심 벤게로프, 나탈리아 구트만, 제시 노먼, 보로딘 4중주단 등과 협연하였고 베르비에,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 등 여름 음악제의 단골 초청자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유리 바슈메트

바슈메트의 분신과도 같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1986년에 설립된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가히 유리 바슈메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로 나라가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자 바슈메트는 1992년 악단을 재조직했고, 그해 5월 모스크바 음악원 메인홀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졌다. 이틀 뒤에는 프랑스 파리 살 플레옐 극장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치러내며 부활의 신호를 쏘아 올렸다.이후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뉴욕 카네기홀, 런던 로열 앨버트홀과 바비칸 센터, 파리 샹젤리제극장, 베를린 필하모니,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도쿄 산토리홀 등 세계적인 공연장의 무대에서 연주하며 우리 시대 대표적인 현악 실내악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기돈 크레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빅토르 트레차코프, 막심 벤게로프, 바버라 헨드릭스, 린 하렐, 제임스 골웨이 등 저명한 아티스트들과 협연한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EMI에서 크레머, 로스트로포비치, 바슈메트와 슈니트케의 3중 협주곡을 녹음했으며, 바슈메트의 독점 레코딩 계약의 일환으로 소니 클래시컬(당시BMG/RCA)에서 1998년 최초의 음반 발매 후 현재까지 공연과 음반 양쪽에서 늘 핫한 뉴스를 끌고 다니는 단체다.

러시아인들이 농반진반으로 하는 얘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영하 40℃는 추위가 아니다. 알코올 40도는 술이 아니다. 400㎞는 거리가 아니다.”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찾고 또 찾아도 새로운 발견과 놀라운 경험이 이어지는 신비의 러시아!

3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그 음악과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은 이제껏 만나지 못한 문화의 새로운 경지와 만나는 짜릿한 순간이자, 우리가 함께 살고 사랑해야 할 이 땅 위에서 새로운 인연을 엮어나가는 결정적인 만남이 될 것이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음악칼럼니스트)

고양문화재단에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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