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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떠나는 역사산책 ➅
류드밀라 라주몹스카야의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과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사회주의 체제 몰락으로 혼란스러운 소비에트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려는 선생님과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는 학생들 사이의 극명한 대립을 통해 격변기 소비에트를 살아가는 세대 간의 간극과 깊은 골을 드러낸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데올로기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이를 국가 체제로 세운 나라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수립된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체제는 이후 약 70년간 지속되면서 세계 각국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비에트 연방과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을 아우르는 사회주의 진영, 이른바 ‘철의 장막’의 맹주로서 러시아는 정치와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함께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면서 스포츠와 우주 개발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특히 1950~60년대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과 우주인, 달 무인탐사기를 쏘아 올리는 등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힘과 동력이 약화되었고, 경제 부진과 불황이 이어지면서 1980년대부터는 정부 주도로 소극적인 시장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흔들리는 체제와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고, 고르바초프가 이끈 개혁/개방 운동인 페레스트로이카(공산주의 경제의 체제적 한계점을 개선하고 점진적인 시장 자유화를 추구하는 등의 정치·경제적 개조. 흔히 ‘개혁’으로 번역된다)와 글라스노스트(언론 검열 및 어용화, 사상 탄압 등 경찰국가주의에 대한 변혁을 추구하는 정보의 자 유와 공개. 흔히 ‘개방’으로 번역된다)도 무너진 사회를 복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체르노빌 사태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결국 1991년, 소비에트 체제는 해체되었다. 지구상 가장 거대했던 사회주의 국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길 잃은 세대들의 방황과 충돌

이데올로기 중심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급작스럽게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러시아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개인의 경쟁력, 자본과 정보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장 경쟁 체제에 내몰리게 된 사람들은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졌다. 이 와중에 이데올로기에 헌신하는 공동체 생활 중심으로 살아왔던 기성세대와 각자 도생으로 생존을 추구해야 하는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 역시 깊어졌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시장경제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하고 있던 사이, 이미 정보와 권력을 지니고 있던 일부 기득권 세력은 혼란기를 기회로 삼아 자본의 축적에 앞장섰고 그 결과 러시아는 빠른 기간에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를 겪게 되었다. 공동의 빈곤 대신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에 가려진 상대적 빈곤이 점점 더 사람들을 옭죄기 시작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1948~)의 목소리 소설(한 시대를 살며 동일한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오랜 기간 인터뷰해 얻은 기록을 엮은 문학 장르) <세컨드핸드 타임>에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내몰린 소비에트 세대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구 소비에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듣고 기록한 실제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들로 이루어져 있다.

평생 믿고 따랐으나 신기루처럼 사라진 사회주의와 어느 날 불쑥 등장해 삶을 장악해버린 자본주의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 그 사이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아래 세대와 가치관의 충돌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리얼하게 펼쳐진다.

“…하루아침에 돈이 사라졌어요. 돈도 사라지고 우리의 삶도 사라졌어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했어요. 밝은 미래를 외치는 대신 ‘부자가 되세요! 돈을 사랑하세요!’라며 외쳐댔어요. 민중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아무도 자본주의에 대해 꿈꾸지 않았거든요. 적어도 저는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내 손자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 ‘할아버지는 정말 공산주의를 믿었어요?’ 그래, 난 꿈이 있었어. 움막에는 평화를, 궁전에는 전쟁을 선사하겠다는 꿈. 그런데 저 애들은 고작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해. 가게마다 햄이 넘쳐나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안 보여.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은 보질 못했어.”

“1990년대 말에는 내가 대학 강단에서 소비에트 연방을 언급하면 학생들이 큰 소리로 비웃곤 했어요. 당시 학생들은 자신들 앞에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달라요. 지금의 학생들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불평등, 가난, 뻔뻔한 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고 뼈저리게 느낀 아이들이에요.”

–  <세컨드핸드 타임> 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 김하은 역, 이야기가있는집, 2016년

소비에트 vs. 포스트 소비에트

류드밀라 라주몹스카야(Ljudmila Razumovskaya, 1946~ )가 쓴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바로 이러한 혼란기의 소비에트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엘레나 선생님과 새로운 세상에 영리하게 적응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대립을 선명한 갈등 속에 드러내는 이 작품은, 1981년 초연 당시 소련 정부에 의해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었지만, 곧 유럽과 세계에 널리 알려지며 수많은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되면서 많은 호응과 관심을 받았다.

혼자 사는 고등학교 수학선생 엘레나의 집에 어느 날 밤 학생 4명이 불쑥 찾아온다. 꽃다발과 선물을 한가득 안고 찾아온 이들은 엘레나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사랑과 존경의 인사를 건네고, 뜻하지 않은 제자들의 방문에 감동한 엘레나 선생님은 기쁜 마음으로 이들을 맞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곧 학생들은 조심스레 자신들이 찾아온 진짜 이유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부탁인즉슨, 어제 본 수학시험 답안지를 고칠 수 있도록 답안지가 들어 있는 학교 금고의 열쇠를 빌려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엘레나 선생님은 곧 아이들의 의도를 깨닫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아이들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잘 타이르며 거절한다. 대학이야 내년에 가도 되는 것이고, 또 못 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윤리를 어기면 더 불행해진다는 것이 그녀의 논리다.

하지만 학생들 역시 자신들의 입장과 논리로 차례차례 엘레나 선생님을 설득하려 든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수학 점수가 필요한데 고작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느냐는 논리다. 아무도 몰래 자기들 점수만 고치면 누구도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데 왜 들어주지 않느냐며 오히려 선생님에게 화를 내기까지 한다.

학생들을 대화로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엘레나 선생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지만, 학생들은 점점 더 치열하고 집요하게 열쇠를 요구하면서 급기야 선생님의 집을 뒤지기까지 한다.

열쇠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

도를 넘어서는 학생들의 태도에 차갑게 굳어버린 엘레나 선생님은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 절대 열쇠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친구까지 철저하게 이용하고 파괴시키는 학생 볼로쟈의 계략 앞에 결국 열쇠를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이미 서로 바닥까지 드러낸 채 무너질 대로 무너진 학생들은 아무도 열쇠를 건드리지 않은 채 황급히 나가버리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열쇠와 엘레나 선생님을 애타게 부르는 랄랴의 목소리 위로 조용히 막이 내려온다.

처음에는 금고 열쇠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이를 거부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설전으로 시작하지만, 아무도 열쇠에 신경 쓰지 않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단순히 열쇠는 넘겨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두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 무엇이 남았는가에 대한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라도 성공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래서 언뜻 옳고 그름의 대결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엘레나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대립은 단순한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가치관의 충돌과 대립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극 중 엘레나 선생님과 학생들은 사제지간이라는 사회적·윤리적 관계를 넘어,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소비에트 시기와 그것이 붕괴된 포스트 소비에트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수학 시험 답안지를 놓고 벌어지는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갈등은 개인으로서의 의견 차가 아니라 격변기 소비에트를 겪은 두 세대의 간격과 깊은 골을 드러내는 것이다.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했던 소비에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사라진 자리에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가 갑작스레 들어왔다. 기성세대들은 비록 가난하고 초라하더라도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이 사회를 지배했던 예전이 나았다며 젊은 세대를 비판하지만, 그들은 그 가치들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그들 스스로의 삶을 통해 입증했고, 결국 그들 스스로 더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이념을 사회 속에 들여왔다.

엘레나 선생님의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바로 그런 정글의 법칙, 남을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너보다 약한 자를 물어뜯고 너보다 강한 자에게는 무릎을 꿇으라는 새로운 사회법칙 속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다. 오로지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엘레나 선생님의 가르침은 어떤 무게도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또한 개개인의 비도덕성과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무한경쟁과 성과 위주의 사회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 앞에서, 바로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낸 기성세대들 역시 결백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생들에 맞서 어떻게든 그들을 다시 이끌어보려 애쓰지만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침묵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모습은 무언의 비난이나 포기라기보다는, 바로 그러한 괴물을 만들어낸 사회의 기성세대로서 그녀 스스로 마주하게 된 자조적 성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갈수록 치열해지는 자본주의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단순히 소비에트 시대를 그린 연극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연극으로 떠나는 역사 산책’은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즉,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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