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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정영두 안무가 인터뷰

지난 2010년 발표된 정영두 안무의 <제7의 인간>은 유럽 이민 노동자들의 삶을 다큐 형식으로 기록한 동명의 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그해 한국춤비평가협회 ‘올해의 무용 작품 베스트 6’에 선정되기도 한 <제7의 인간>이 11년 만에 다시 만들어져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는 6월 11일(금)과 12일(토)에 공연된다. 진정성 있는 움직임으로 무용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온 정영두를 서면으로 만나 다시 만나게 될 <제7의 인간>에 대해 들어보았다.

11년 만에 <제7의 인간>을 다시 선보이는 안무가 정영두

Q. 존 버거(John Berger)와 장 모르(Jean Mohr)의 책 <제7의 인간>(A Seventh Man, 1975년 초판)은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서 무용 공연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나요?

“이주 노동자들은 불쌍하고 착해.”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어.”
“분명 나중에 문제가 될 거야.”
“자본가들은 나빠.”

이렇게 쉽게 단정하고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 사회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개인의 삶은 더 복잡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에 대해 판단하거나 정의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왜 이주 노동자들이 생기는 걸까? 우리에게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일과 꿈을 찾아 떠났을까? 이런 질문들을 해보고, 그들의 삶을 잠시 짐작 해보는 것이 고작입니다. 책 <제7의 인간>을 통해 이런 단순한 질문들을 얻었고 그것이 작품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안무가이자 창작자로서 이 작품과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11년 전과 혹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기본적인 관점은 1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용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런 면에서 작품의 주제나 관점이 달라진 것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상념들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인간이 이주하는 과정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농장, 독일의 간호사와 광부들, 중동의 건설 노동자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주와 연해주의 강제 이주까지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분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당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현재 우리나라에 온 이주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감당하고 있을지 역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영화 <미나리>를 통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인들이 얼마나 차별받고 외롭게 살았는지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차별받고 있는지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나와 나의 가족, 같은 민족이 아니면 관심이 없습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참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념들이 모두 작품 안에 반영되거나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작품과 상관없는 안무가의 생각들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작품 감상에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웃음)

 

<제7의 인간>

 

Q. 안무, 무대, 구성 등 시각적 측면에서 2010년의 초연과 비교해 달라지는 점들을 알려주세요.

2010년 초연 작품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들을 빼고 새로운 장면들을 추가했습니다. 기존의 장면들을 적지 않게 수정 보완하였고, 장면에 따라 다양한 무대 공간들을 만들어보려고 고민했습니다. 또 무용수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안무가인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이나 이미지, 뉴스 등을 공유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이나 신문기사를 통해서 정보를 리서치하고, 이주노동자 관련된 분들을 모시고 강의도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노동하기를 꺼려 할까, 노동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이며 권력과 권리부터 멀어진 사람이 된다는 사고는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머릿속으로 들어왔을까, 노동하는 손이나 삽과 망치를 다루는 기술의 가치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까, 불로소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 되어버린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뭐 이런 이야기들을 연습 중간 중간 나누고 있습니다.

 

Q. 공연에 등장하는 ‘인체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나요?

산업혁명 이후에 많은 공장들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기계화되었습니다. 인간이 사용하고 만든 것들이 인체공학적이지 않은 것들이 없지만, 공장의 기계들과 구조는 인간의 신체를 이용해 가장 많은 이윤을 얻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의 신체에 맞는 기계를 만들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인간의 관절 활동 범위, 근육과 뼈의 기능 등을 연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계들을 만들었습니다. 공연에 등장하는 인체도는 인간의 신체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정리한 도면 같은 것입니다. 책 <제7의 인간>에도 나와 있고 시각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여러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공연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7의 인간>

 

Q. <제7의 인간>을 가장 재밌게 감상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주노동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념적인 메시지나 판단이 들어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제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회적인 현상과 의미에 대해서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과 매체가 훨씬 자세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프레임 없이 무용이라는 장르를 즐기러 오시는 것이 작품을 가장 즐겁게 감상하시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관객분들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스태프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웃음)

글. 정건(고양문화재단), 김주연(LG아트센터)
사진제공. 두 댄스 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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