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계를 애도하며, 그리고 그 세계를 다시금 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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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휴먼 연극 <A, 아이> 리뷰

디지털 기술 활용에 대한 예술 현장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고양문화재단은 『2021 디지털-씨어터 스테이지』 공모 사업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융복합 공연 세 편을 선정하여 선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첫 작품인 연극 <A, 아이>는 ‘메타 휴먼’ 기술을 활용한 신작으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난 6월 25일(금)~27일(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A, 아이>에 대한 비평을 받아보았다. (편집자주)

“우리들의 세계는 무너졌다”는 선언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덮쳐온 지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지금의 우리는 당황하고 우왕좌왕 했던 시기를 지나, 조금씩 뒤틀린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면 공간에서 관객들을 만나던 예술가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술을 지속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찾고 있다. 가장 흔하게는 온라인 비대면 상영부터, AR이나 VR 기술을 사용해 가상공간에서 관객을 마주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방법까지, 그 ‘새로운 방법’에는 으레 새로운 기술이 접목 되고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예술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포스트코로나/뉴노멀의 세계를 준비하고, 그 세계를 향해 가고 있다.

더 나아가, 연출 홍사빈은 메타 휴먼 연극 <A, 아이>를 통해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그 다음 세대/세계를 상상한다. 그의 상상 안에서, 연극은 구시대의 전유물로 상징된다. 홍사빈은 이 작품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구시대의 연극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을지, 포스트 코로나/뉴노멀의 세계에서 자신이 과연 어떤 새로운 연극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 새로운 연극을 위해 자신이 찾은 가능성들, 언리얼 엔진의 메타 휴먼이나 프로젝션 맵핑같은 기술들을 무대 위에 포진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극 안에서 “우리들의 세계-구시대의 연극-는 무너졌다”라고 선언하는 와중에도 그의 무대가 올라가고 있는 물리적 극장은 여전히 건재하며 관객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상상하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연극’에서 극장과 관객의 존재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의 상상 안에서) 코로나 시대의 연극에서 무력화된 것 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 새롭게 존재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메타 휴먼 연극 <A, 아이> (배우 박창욱)

선언과 함께, 기술로 세운 무대

연극 <A, 아이>는 연극이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두고, 이전 시대의 연극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와 연극에 대한 기억이 없는 메타 휴먼 ‘A’가 만나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메타 휴먼은 언리얼 엔진이라는 회사의 디지털 휴먼 제작 프로그램의 이름인데, <A, 아이>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실제 사람의 형상과 움직임 등을 모션 캡처로 본떠 AI 기술로 애니메이팅을 한 가상의 인물 A를 만들어냈다. 즉, 아이의 역할을 더블 캐스트로 연기한 배우 박창욱과 권슬아는 무대 위에서 이 메타 휴먼 A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A의 행동과 대사는 사전에 레코딩 된 것이 플레이 되고, 배우들이 이에 맞춰 연기를 하는 식이다. 무대 위에는 메타 휴먼을 등장(투사)시키기 위한 커다랗고 하얀 배경막이 설치되어 있다. 더불어, 이 위로 다양한 시공간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션 맵핑까지 시도된다.

<A, 아이>는 실질적으로 배우 1인이 연기하는 1인극이지만, 메타 휴먼 A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인물들을 극에 등장시킨다. 이 인물들은 모두 목소리로 등장하고, 때때로 목소리와 함께 조명이 무대의 한 구석을 비추면서 마치 해당 인물이 무대 위에 존재하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메타 휴먼 연극 <A, 아이> 인터뷰 하이라이트 (고양문화재단 계간 <누리> 2021 여름 호)

죽음과 과거의 연극을 애도하는 시간

극중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연극을 하던 젊은 배우로, 부모님의 죽음 이후 연극을 그만두고 칩거 중인 것으로 묘사된다. 아이가 맞닥뜨리게 된 뉴노멀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극장에 가지 않고 각종 OTT 플랫폼을 통해 컨텐츠를 소비한다. 아이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며 자신이 속해 있던 안전한 세계는 무너졌고 따라서 “배우로서의 사명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말한다. 존재의 이유, 맡았던 임무가 사라진 아이의 몸, 즉 배우의 몸은 이 세계에서 덧없이 공허하고, 외롭다. 아이의 이야기는 부모의 죽음이라는 사적 경험을 경유하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혹은 그가 안착해 있던 세상에 대한 의심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나아간다.

아이는 부모와 직업을 상실했다는 무력감에 좌초되지 않고 새로운 연극을 하기 위해서 “일단은 떠나야 한다”며 달아나듯 길을 나선다. 다만, 그는 부모의 유품과 연극 소품 등 과거의 영광과 흔적이 가득 담은 무거운 캐리어 하나를 내내 끌고 다니며 쉽사리 과거의 세계와 작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 아이의 앞에 A가 나타난다. 아이의 배낭과 동기화되어 있는 A는 아이의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과거에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해 AI 스피커를 샀다던 아이는 5년 만에 A와 다시 대화를 나누게 되고, A는 아이의 여정에 동행자가 된다. 두 인물은 여정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고통과 외로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아이는 천도제를 지내거나, 자신의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A에게 데이터로 백업을 하는 등 지나가버린 것들, 과거의 것들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비로소 새로운 연극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연출 홍사빈은 메타 휴먼인 A를 통해 과거의 인물을 보다 객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AI가 인물의 사적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지나간 사건과 인물에 대해 더 객관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본 것이라 생각된다. 아쉬운 점은, 연출의 의도와는 달리 인물간의 대화가 기대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아 두 인물이 서로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관객이 크게 공감하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공연은 A가 던지는 질문이 아이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아이가 어떤 순간에, 왜 부모의 유품이 담긴 짐을 내려놓고 다시 홀로 “다짜고짜 살아보기로 한다”고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친절한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대사들이 문학적 수사를 지향하고 있는 데다, 다소 단순한 플롯에 비해 극 속에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 연극의 종말과 새 연극의 출현, 죽음에 대한 애도 등 거대 서사를 상징하는 것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하며 이야기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에게 A가 어떤 이유로 꼭 필요한 인물이었어야 하는지, 이 공연에서 메타 휴먼이 존재했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아 있다.


메타 휴먼 연극 <A, 아이> (배우 권슬아)

아이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으레 그렇듯 배우는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객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안전하고 정형화된 세계는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우리의 예상보다 더 이른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A, 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연극인들이 느꼈을 좌절과 우울을 전면에 드러낸다. 관객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로써 연극이, 자신의 존재가 쓸모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는 이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기술이라는 매체를 꺼내들고 이것을 연마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니, 어쩌면 메타 휴먼 기술이나 프로젝션 맵핑의 사용이 이 극에서 얼마나 유효했느냐를 묻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얼마나 많이 실험해 보았느냐는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는 극의 말미에 “온 마음 다해 살고 싶다”고 외친다. 그는 우리의 세계가 무너졌다고 선언했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전언으로 남긴 것처럼 이 기술들이 사용될 이 다음의 공연을 기다려보고 싶다.

메타 휴먼 연극 <A, 아이> (배우 박창욱)

글. 박다솔(공연평론가)
사진. 노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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