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프리드리히 2세, 음악의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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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슈타트펠트 피아노 리사이틀 

<음악의 헌정> 집중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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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의 젊은 거장’ 마르틴 슈타트펠트의 단독 내한공연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10월 1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펼쳐질 슈타트펠트의 이번 공연에서는 바흐 말년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음악의 헌정’과 쇼팽의 두 연습곡(에튀드)이 연주될 예정이다. 2009년 첫 내한 리사이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 슈타트펠트는 ‘이 시대의 바흐 스페셜리스트’ 중 중요한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가 연주할 바흐 <음악의 헌정>에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과 기대가 큰 것은 바로 이 때문. 프러시아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에게 헌정한 이 외교적·정치적 명곡이 서양 근대음악사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는 바흐의 어떤 세계관과 만나게 될지 음악평론가 이준형의 해설로 <음악의 헌정>을 집중탐구해본다.   [편집자주]

 

 

난해하고 비밀스러운 음악의 미궁으로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1750년, 독일, 작곡가/오르가니스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아마도 서양음악 역사상 최초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음악에 모두 관심을 기울이면서 역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려고 했던 음악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바흐에게 음악은 궁극적으로 우주의 실체인 자연과 이를 지어낸 창조주의 접합점이자, 크리스토프 볼프(Christoph Wolff)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사물이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하는가를 가르치는 학문’이었다.

동시대의 헨델이나 비발디, 텔레만에 비해 바흐는 평생 좁은 지역(튀링엔과 작센)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그는 방안에 앉아서 서양음악의 과거를 연구하고 ‘현재’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음악 안에서 당대 음악의 모든 형식과 내용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며 음악을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안내했던 것이다. 이런 면모는 바흐의 평생 동안 계속된 것이지만, 특히 노년으로 접어든 이후부터는 한층 더 진지하고, 치밀하며, 일관된 구조 안에서 진행되었다.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이자 라이프치히 시의 음악감독으로서 위상을 확립하고 애초에 의도했던 교회음악 레퍼토리를 어느 정도 축적한 뒤, 50대에 접어든 1730년대 중반부터 바흐의 작곡 활동은 실제적인 필요성 때문에 만드는 작품보다는 기존의 것을 개선하거나 자신의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뚜렷한 의도를 담아낸 작품들이 많아진다. 그 첫 시도는 4부작으로 이루어진 <클라비어 위붕>(Clavier-Übung) 시리즈였다. 바흐는 1731~41년에 걸쳐 출판된 이 시리즈를 통해서 당대의 모든 악기와 악곡 형식을 아우른 건반음악의 집대성을 시도했는데, 바로크 건반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인 모음곡(suite)을 다룬 여섯 곡의 파르티타(1부)로 시작해서 이탈리아-프랑스 양식의 탐구(2부)와 오르간 음악(3부)을 거쳐 변주곡 양식을 다룬 ‘골드베르크 변주곡’(4부)으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교회음악 장르에서는 1733년에 작센 국왕에게 바쳤던 미사곡(키리에-글로리아)을 B단조 미사로 확장하면서 시대를 초월한 가사(라틴어 미사 통상문)에 교회음악의 모든 형식을 시험했으며, ‘푸가의 기법’을 정리하면서 평생 동안 탐구했던 대위법 양식에 다시 한 번, 더 깊고 넓게 도전했다. 이렇게 바흐가 각각 기악과 성악 양식에서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했던 B단조 미사와 <푸가의 기법> 두 곡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작곡이 이루어졌던 작품들이다. 그리고 1740년대에 만들어진 또 다른 작품이 바로 <음악의 헌정>(Musicalisches Opfer)이다. <음악의 헌정>은 B단조 미사나 <푸가의 기법>만큼 방대하지는 않지만, 두 작품 못지않게 난해하고 비밀스러운 ‘음악의 미궁’이다.

 

 

외교적·정치적 헌정이자 평화에 대한 메시지

바흐 <음악의 헌정>

 

프리드리히2세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 1712년 ~ 1786년, 독일 동부, 프러시아의 대왕]

<음악의 헌정>은 프러시아 왕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실 바흐는 평생 동안 스스로를 고향인 아이제나흐 시민이라고 여겼고, 또 현실적으로는 작센 왕국의 궁정음악가이자 신민이었기에 프러시아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프러시아가 급속하게 독일 최고의 강국으로 떠오르는 상황, 그리고 프러시아에서 몇 대에 걸쳐 음악을 사랑하는 군주와 무시하는 군주들이 번갈아 등장했던 묘한 상황은 바흐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령 음악을 사랑했던 프리드리히 1세가 1713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뒤를 이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했던 궁정악단을 모조리 해고했는데, 이웃의 소국 쾨텐의 젊은 공작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들을 데려갔고 이 일급 앙상블을 이끌기 위해 영입된 ‘마지막 퍼즐’이 바로 카펠마이스터 바흐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음악을 싫어했던 ‘군인 국왕’의 맏아들인 왕세자는 또 플루트를 사랑하는 열렬한 아마추어 음악가가 되었고 부자(父子)는 살벌한 갈등을 겪게 된다. 아버지를 피해 영국으로 야반도주까지 시도했던 이 왕세자가 바로 프리드리히 2세(대왕)였으니, 이 플루티스트 국왕은 1740년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대대적으로 궁정악단을 재건하면서 바흐의 둘째 아들인 카를 필립 에마누엘을 건반 연주자로 채용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와 작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1745년에는 몇 달 동안 바흐가 살고 있던 라이프치히를 점령하기도 했다. 바흐로서는 일찍이 1721년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바쳤던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의 조카손자가 벌이는 좌충우돌 행보를 보며 착잡한 감정을 느꼈을 법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바흐는 둘째 아들을 보기 위해 1741년과 1747년, 두 차례에 걸쳐 베를린을 방문했다. 그런데 1741년 방문은 개인적인 것이었던 반면 1747년 방문은 상당히 공적인, 혹은 외교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 방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반면 두 번째 방문은 널리 알려진 것도(당시 독일 신문들은 모두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 두 번째 방문은 바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며, 음악사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을 방문한 ‘老바흐’가 1747년 5월 7일에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왕이 질버만의 피아노로 제시한 즉흥적인 주제(‘대왕의 주제’)에 따라 즉흥적으로 푸가를 연주해서 놀라게 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바흐가 프리드리히 2세 앞에서 연주했던 즉흥 푸가를 다듬고 확장시켜서 대규모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 바로 <음악의 헌정>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음악의 헌정>은 외교적, 정치적 헌정인 동시에 평화에 대한 메시지였다. 출판 악보를 보면 ‘전쟁과 평화의 학문과 음악에서 탁월하고 강력한 전하께’ 헌정되었는데, 프러시아 군대가 작센에서 철수한지 몇 달 밖에 안 된 시점이라는 것을 고려한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작센 왕국의 궁정 음악가 바흐는 막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 군주에게 ‘평화’를 호소하고 싶었던 것일까?

 

 

새로운 음악의 물결을 통찰했던 바흐의 음악관

 

그러나 <음악의 헌정>이 서양음악사의 명곡으로 남은 것은 물론 그 안에 담겨진 음악적 심오함 때문이다. 사실 프리드리히 2세에게 굳이 이런 복잡하고 엄격한 작품을 헌정한 것만 봐도 바흐가 단순히 정치 권력자에 대한 헌정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왕은 대위법 양식을 싫어하고 새로운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게다가 트리오 소나타의 플루트 파트는 국왕이 연주하기 어려울 만큼 난해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바흐는 베를린 방문과 이어지는 출판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음악관을 피력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앞뒤를 동시에 내다보았던 바흐는 여기서 옛 음악(대위법 양식에 따른 푸가와 카논)에 새로운 음악(다감 양식과 갈랑트 음악)을 가미한 음악적 기념비를 세웠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개의 리체르카르(ricercar), 트리오 소나타, 열 개의 카논(canon)은 ‘왕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룬 것으로 또 다른 형태의 <푸가의 기법>이라고 할 만한데, 곳곳에서 바로크 음악이 갈랑트 음악을 제압하고 있다.

선율은 갈랑트 풍이지만 조성 체계는 바로크적인 이원적인 아펙트(Affekt)를 추구한 트리오 소나타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어쩌면 바흐는 새로운 음악의 물결이 가볍고 우아한 갈랑트 음악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화성과 대위법의 관계를 통한 선법 체계의 극복을 통해서 온다고 선언하려는 듯하며, 실제로 서양 음악의 근대는 바흐가 예견한 대로 전개되었다.

게다가 작품 곳곳에는 뚜렷한 종교적 상징이 숨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몇몇 학자들은 <음악의 헌정>이 내면적으로는 현실의 지배자가 아니라 창조주에게 바쳐진 작품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바흐가 왕에게 바친 헌사인 ‘군주의 영광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표현이 요한 수난곡의 첫 합창에 나오는 ‘우리의 주군이신 주님, 그분의 영광은 영광스럽나이다’라는 표현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나 열 개라는 상징적인 카논 숫자(바흐에게 카논은 거의 항상 신학적인 ‘법칙’을 상징했다) 등 여기에 대한 증거도 여럿 있다.

이런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또 악보에 붙어있는 왕에 대한 찬사가 얼마나 노골적이든 간에, 바흐가 <음악의 헌정>을 통해 군주의 취향에 봉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트리오 소나타의 3성 푸가에서 갈랑트 매너리즘을 허물어 버렸던 바흐는, 옛 음악을 들으면 ‘교회 냄새가 난다’며 질색했고 종교를 혐오했던 계몽주의자 국왕을 향해 자신의 세계관을 선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슈타트펠트의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구현될 <음악의 헌정>

 마르틴슈타트펠트 7 ⓒ Yvonne Zemke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

 

프리드리히 2세는 자기 반주자의 아버지인 바흐 앞에서 피아노로 ‘왕의 주제’를 치면서 이런 작품이 탄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흐의 음악이 흔히 그렇듯, <음악의 헌정> 역시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파악하기 힘든 작품이 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작품이다. 이제까지 바흐를 꾸준하게 연주하면서 피아노라는 악기에 얽매이거나 세부적인 아름다움에 탐닉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력과 구조적인 건축미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던 마르틴 슈타트펠트가 들려주는 <음악의 헌정>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영역을 비출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글. 이준형(음악평론가)

           

INFO.

 

잘라낸_슈타트펠트포스터출력

 

2016 아람 클래식 월드스타 2

마르틴 슈타트펠트 피아노 리사이틀

 

일시 : 2016.10.1(토) 7:00pm

장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

프로그램 : 바흐_ 음악의 헌정, BWV1079 / 쇼팽_ 연습곡 Op.10, Op.25

대상 : 만7세 이상

입장료 : R 7만원, S 5만원, A 3만원

문의·예매 : 1577-7766 / 예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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