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소나타의 진수를 통해 만나는 백건우의 ‘깊어진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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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아람누리 개관 10주년 – 거장의 귀환 Ⅱ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피아노의 신약성서’로 일컬어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지난 2007년 예순 한 살의 나이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녹음 및 마라톤 리사이틀을 완주했던 백건우가 10년 만에 같은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3월부터 전국 10여 개 도시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리사이틀을 펼치는 것이다. 초기와 중기의 작품들이 섞여 있는 여느 무대와 달리, 6월 9일(토)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의 프로그램은 16번, 17번, 22번, 23번 등 작곡가의 개성적 음악언어가 표출되는 과정을 오롯이 추적할 수 있는 중기 집중의 알찬 라인업이 특징이다. 특히 백건우의 이번 베토벤 프로젝트 전체 클라이맥스라 해도 무방할 23번 ‘열정’으로 인해 벌써부터 가슴은 기대로 뛴다.

 

 

백건우의 2007 베토벤 소나타 프로젝트에 대한 기억

피아니스트 백건우 © Youngbin Park

…. 베토벤의 소나타들은 정복을 기다리는 견고한 성채이다. 얼핏 난공불락(難攻不落)은 아닌 듯 보여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일단 몸을 던지고 보는. 하지만 승리에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에 종종 상처투성이로 귀환하게 되는 치열한 전쟁터이다. 알피니스트들에게 히말라야 16좌가 그러하듯 피아니스트들은 끊임없이 베토벤 소나타 32곡에의 등정을 시도하거나 꿈꾸며 산다. 그 도전은 피아니스트를 단련시키고 성숙시키는 확실한 코스이다. 소나타 전 32곡을 일거에 정복해보겠다는 것은 강렬한 음악적 유혹이다. 이미 국내외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거사에 도전했고 지금도 간단없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백건우는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고 했다….

김순배, 200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앨범리뷰 중

 

벌써 10년 전의 기억이 되었다. 특유의 열정으로 주요 작곡가들의 작품세계를 ‘통째로’ 제시해주기를 즐기던 그가 베토벤만큼은 보류했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기존의 해석이나 연주방식의 전형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에서 무르익은 자연발생적 언어로 흘러나올 때까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미뤘다. 그리고 자신만의 베토벤을 내보일 수 있을 때까지 가늠할 수 없는 작품들의 심연 속으로 깊이 침잠했다. 2007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 발매와 일주일간의 집중 콘서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자유의 웅대한 증언이었다. 실행(execution)에만 뜻을 두었더라면 진즉 이루어졌을 작업이건만 피아니스트가 기다린 것은 이 ‘자유함’이었다. 강도 높은 행군이었던 2007 프로젝트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넉넉한 음악적, 예술적 용량의 증명임과 동시에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이 거대한 레퍼토리가 지닌 위력의 재확인이었다.

 

 

2017, 칠순에 접어든 피아니스트의 삶과 베토벤

2011년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리사이틀을 펼치고 있는 백건우

 

그로부터 10년이 흐르고 칠순에 접어든 피아니스트의 삶과 베토벤을 다시 만나 볼 최적의 시간이 찾아왔다. 짧지 않은 세월의 흐름 속에 인생과 베토벤을 향한 시선이 어떻게 심화, 숙성되었을지, 그가 다시 읽어주는 베토벤 소나타들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우리 모두는 궁금하다.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보고 또 봐도 새롭다는 점이다. 독보적 거장 피아니스트 리히터(Sviatoslav Richter)는 ‘이십대에 만났던 열정 소나타와 마흔 이후에 만나는 그것은 전혀 다르다. 마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폈을 때 몰랐던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고 맥락의 흐름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처럼… 베토벤이 그렇다’고 토로했다. 리히터의 고백처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이다. 책 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주하는 이에 따라, 또 연주하는 시기에 따라 다른 버전이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베토벤 소나타의 경우 시간은 연주자의 편이다. 기술적, 내용적 측면에서 피아니스트를 훈련시키는 확실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인간적, 음악적 성숙의 정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텍스트가 베토벤 소나타이다. 연륜과 함께 깊이 무르익었을 백건우의 2017 베토벤이 더욱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3월에 시작하여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골고루 순회하는 2017 백건우 베토벤 프로젝트의 본격 상승 능선에 6월 9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공연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연주회는 고양아람누리 개관 10주년 기념 ‘거장의 귀환’ 시리즈의 일환으로 5월 20일 소프라노 조수미 콘서트에 이은 빅 이벤트여서 더욱 주목에 값한다. 차제에 이 시리즈가 고양아람누리 클래식 공연 활성화의 힘찬 모멘텀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2007년에도 그랬듯 백건우의 프로그램은 일련번호에 의하지 않는다. 출판 순서대로 연주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베토벤의 의도가 아니었을 터. 한 번호의 뒤에 어떤 것이 와야 할지 숙고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드는, ‘음표들이 사랑하고 서로 끌리는 대로’ 곡의 순서를 정하는 백건우의 방식은 옳다. 고양아람누리 무대에는 소나타 16번, 17번(템페스트), 22번, 23번(열정)이 오른다. 대개 초기와 중기의 번호들이 섞여 있는 여느 무대와 달리 작곡가의 개성적 음악언어가 표출되는 과정을 오롯이 추적할 수 있는 중기 집중의 알찬 라인업이다. 자연히 아람누리 프로그램에는 출판 순서와 작품의 흐름이 바람직하게 맞물려있다. 중기가 시작되는 1802년의 16번으로부터 소나타 32곡 전체의 정점을 찍는 1805년의 23번까지 연주곡목의 면면을 살펴본다.

 

 

청력상실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블랙유머

16Op.31-1

하이든과 같은 고전시대 거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청력상실이 본격화되는 1802년 만들어진 곡. 교향곡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웅’ 교향곡도 같은 해 나왔다. 16번의 독특한 점은 일종의 ‘블랙유머’의 캐릭터가 곡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보유한 다채로운 음악어법들 중 하나가 ‘풍자’와 ‘패러디’이다. 1악장의 재빠른 16분 음표 패시지의 질주와 싱코페이션 리듬의 배치가 마치 고양이가 쥐를 쫒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탈리아식 희가극인 ‘오페라 부파’의 소나타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2악장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제외하고 서른두 개 소나타의 2악장 가운데 가장 길다. 한없이 이어지는 트릴과 조금은 과장된 장식적 음형들이 실은 당시 인기를 누리던 경박한 이탈리아 오페라를 패러디한 것이라는 설은 매우 그럴듯하다. 3악장은 소나타의 론도 악장들 중 단연 출중하다는 평에 걸맞게 가벼운 춤곡처럼 시작하여 다양한 짜임새로 확장되는 치밀한 전개가 물 흐르듯 자유롭다.

 

 

폭풍 같은 운명을 뚫고 달려가는 작곡가의 또 다른 초상

17Op.31-2

17번 소나타에 붙은 별칭 ‘폭풍’(Tempest)은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 추측한 측근 쉰틀러로부터 비롯했다. 이곡은 앞선 16번보다 실제로는 1년 먼저 작곡되었다. 청력상실의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 때이다. 느린 도입 음형으로 시작하여 발작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격한 모티브들이 교차하는 1악장에서 당시 베토벤의 감정적 혼란 상태를 유추해볼 수 있다. 빠른 흐름을 갑자기 끊는 수상한 정적과 다음 순간 솟구치는 분출의 대비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닥친 운명에 포효하며 저항하는 ‘템페스트’적 정서로 충만하다. 아다지오의 2악장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슬픔이 음표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있고 중반부 32분 음표의 긴 행렬은 잠시 잦아든 폭풍의 잔향처럼 들려온다. 1악장에서 자신에게 닥친 폭풍 같은 운명과 맨 얼굴로 대면했다면 동일한 리듬형이 집요하게 되풀이되는 ‘무궁동’(perpetual motion)의 3악장은 그 속을 용감하게 뚫고 어디론가 끝없이 달려가는 작곡가의 또 다른 초상이다.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 연주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하는 대조적 주제의 매력

22Op.54

21번 ‘발트슈타인’과 23번 ‘열정’ 사이에 낀 22번은 두 거대한 봉우리 사이의 작은 골짜기 같은 작품이다. 1804년 교향곡 ‘운명’의 초고를 쓰던 시기에 만들어진 22번은 커다란 봉우리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당대에 유행했던 가벼운 ‘살롱음악’의 풍자로도 다가오는 이 번호는 두 개 악장으로 구성된다. 1악장의 부드럽고 우아한 1주제는 얼마 못가서 거친 옥타브 행렬의 습격을 만난다. 조신하게 여성적인 도입부와 공격적이며 남성적인 두 주제의 대비가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한다는 해석을 수긍하게 만든다. 두 개의 대조적 주제는 작곡 논리상으로도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을 안기는데 이를 두고 베토벤이 당대의 범용(凡庸)한 작곡가들의 서툰 작법을 풍자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토카타(toccata)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16분 음형들로 구성된 2악장 또한 1악장과 극심한 대비를 이룬다. 1악장에서 시원스레 터져 나오지 못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이번에는 한없는 배출의 이미지로 변환되었다.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 이외에 독립적으로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 22번이 백건우의 손을 통해 어떻게 풀려나올는지 궁금하다.

 

 

서른두 개 소나타의 정점에 놓일 만한 구조와 표현의 완전성

23Op.57

출판업자에 의해 23번에 붙은 ‘열정’(Appassionata)이라는 부제에 대해 베토벤의 수제자 격이었던 체르니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거대하고 숭고한 어떤 것을 완벽에 가까운 설계에 담고 있는 이 작품을 단순한 단어 ‘열정’으로 함축하기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교향곡 5번 ‘운명’, ‘라주모프스키 사중주’ 등의 걸작들과 함께 베토벤 중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23번은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1악장은 모티브들 사이의 긴밀한 상호 연관성, 풍부하게 자리한 쉼표들의 불가사의, 그리고 격렬한 주제의 대립이 조성하는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명상적인 코드 진행으로 시작해 음표들의 세포분열로 치닫는 2악장을 지나면 불꽃 튀는 파토스의 3악장이 바로 이어진다. 가히 서른두 개 소나타의 정점에 놓일 만한 구조와 표현의 완전성을 갖춘 작품이다. 한편 ‘열정’이라는 별칭은 베토벤의 연애 편력과도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정신적, 육체적, 혹은 그 둘 모두를 아우르는 화려하고 파란 많은 궤적이 세 개의 악장에 각기 다른 양상으로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한 작품을 조망하게 만드는 것 또한 빼어난 레퍼토리의 속성이다. 백건우 베토벤 프로젝트 2017 전체의 클라이맥스로도 손색이 없을 6월 9일의 ‘열정’에 벌써부터 가슴은 기대로 뛴다.

 

 

피아노 소나타는 그 어떤 장르보다 더 지근거리에서 베토벤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르다. 2017년 6월 9일 고양아람누리 무대를 통해 베토벤 인생의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바로 그때. 예리하고 세련된 블랙유머, 고난의 인생항로에서 만나는 가혹한 폭풍우, 무거움을 훌쩍 벗어던지고 붙잡고픈 어떤 가벼움, 용솟음치는 파토스의 제어할 수 없는 향연이 담긴 중기 소나타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삶과 음악에 있어서 또 다른 경지에 훌쩍 들어섰을 거장 백건우와의 베토벤 소나타를 통한 깊은 만남을 기다린다.

 

. 김순배(피아니스트,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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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2017 아람누리 개관 10주년 기념 거장의 귀환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일 시 : 6.9(금) 8:00pm

장 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

입 장 료 : R석 8만원, S석 6만원, A석 3만원

대 상 : 초등학생 이상

문 의 :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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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아람누리 개관 10주년 기념 – 거장의 귀환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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