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스페셜리스트’ 지휘자 성시연의 2017년 마지막 말러(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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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Last & Best 

 

오는 12월 예정된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공연을 앞두고 아쉬운 소식이 하나 전해져왔다. 이번 공연의 지휘를 맡은 성시연이 수장으로 있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2014년 국·공립 오케스트라 사상 첫 여성 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화제를 모았던 지휘자 성시연. 특히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그녀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 부임한 후 낸 첫 음반이 ‘말러 교향곡 5번’이었던 만큼 12월 공연이 감회가 새로울 터다. 더욱이 이번 공연은 유럽 무대 복귀를 앞둔 그녀와 30년 관록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첫 만남이라 더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구스타프 말러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교향곡 5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음악평론가 김문경의 글을 통해 살펴보자. 성시연이 지휘하는 2017년 마지막 말러 교향곡 5번은 12월 8일(금)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감상할 수 있다. [편집자주]

 

 

말러, 교향곡에 인생을 담아내다

베토벤, 브람스를 잇는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1860~1911)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현재 베토벤, 브람스를 잇는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대접받고 있다. 차이콥스키나 드보르자크처럼 큰 대중성을 가진 작곡가는 아니지만 소수의 팬덤이 이제는 어느 정도 다수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나 교향곡 5번은 <비창 교향곡>이나 <신세계 교향곡> 못지않게 무대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곡이 되었다. 말러 음악이 수용되는 과정은 비주류가 핵심권력에 속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현상으로 해석된다.

말러의 교향악은 난해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음악의 속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오히려 너무 쉬워서 문제이다. 말러의 화성 진행은 반음계적 화성으로 복잡하게 얽힌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보다 훨씬 간결하며 심지어는 민요조의 단순한 스타일이어서 감상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나 교향곡 2번 <부활>은 단지 곡의 규모가 장대할 뿐, 본질적인 음악적 내용은 베토벤의 교향악보다도 훨씬 쉬운 축에 속한다. 말러의 음악이 시대를 앞서 갔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음향이나 다양한 장르를 혼성하는 아이디어에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말러의 음악에서 특유한 요소는 포스트모던적인 조합이다. 패션으로 말하자면 쉬폰 원피스에 가죽 라이더 재킷을 매칭하고 모피 머플러를 두르는 식으로 여러 소재를 혼합하는 믹스 매치룩에 가깝다.

말러 교향곡 5번을 한번 들여다보자. 제1악장은 처절한 장송행진곡이고 제3악장은 렌틀러(알프스 지역의 민속무곡)와 왈츠의 교향악적 혼합물이다. 말러는 당시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는데 이는 ‘클리셰의 연속’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미술의 오브제처럼 기성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결과 말러의 음악은 전적으로 새로운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익숙한 생활 음악의 교향적 변용으로 해석된다. 제2악장은 개시악장의 아이디어를 랩소디풍으로 발전시킨 악장이고 제4악장은 현악과 하프를 위한 근대적 무언가(無言歌)에 해당된다. 제5악장에서는 뜬금없이 바흐 풍의 푸가와 코랄이 대위법적으로 얽힌다. 쾌활하고 유희적인 피날레는 집시음악 풍의 장송행진곡인 제1악장에 호응하는 악장으로는 부적절하게 보이지만 1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속에서 나름의 효과적인 엔딩을 형성한다.


[Mahler: Symphony No.5 – Claudio Abbado- Lucerne Festival Orchestra 2004]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한데 뒤섞는 말러 특유의 작법은 어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말러의 복잡한 태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말러가 태어난 곳은 체코의 칼리슈테라는 작은 시골마을이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 또한 출생지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이흘라바이다. 이흘라바는 말러 당대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일종의 ‘언어적 섬’에 해당되는 곳이었고, 유태인이었던 부모의 출신은 말러로 하여금 독일어를 쓰는 체코 태생의 유태인이라는 복잡한 태생을 완성시킨다.

스스로 “3중으로 고향이 없다”고 말하는 주변인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음악의 수도’ 빈에서 수학하고 빈 궁정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이라는 ‘음악의 교황’직에 올랐지만 불안한 정체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말러는 아마도 알마라는 여성에게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는 타고날 때부터 주류 사회에 속했고 빈 사교계의 중심을 차지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알마라는 이름은 단순히 한 음악가의 반려자에 그치지 않는다. 화가 클림트, 작곡가 쳄린스키, 말러, 건축가 그로피우스, 화가 코코슈카, 문필가 베르필 등 그녀와 결혼했거나 염문을 뿌렸던 이들의 면모가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녀의 연애사가 빈 세기말의 문화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 아내 알마 말러와 함께, 우) 알마 말러와 두 명의 딸 안나와 마리아

알마는 오르간 주자 요제프 라보르에게 대위법을 배우고 극장 감독 부르크하르트에게서 니체의 철학을 전수 받았으며 쳄린스키에게서는 작곡을 배웠다. 어머니의 새로운 남편이었던 카를 몰이 빈 분리파 화가였던 덕에 클림트와는 일찍부터 교제하였는데 부모가 그와의 만남을 철저히 금한 탓에 그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작곡 스승에게로 옮겨갔다. 쳄린스키를 못생겼다고 놀리면서도 그와 스킨쉽을 나누는 등 친밀한 관계는 지속되었다. 알마가 22세 되던 해인 1901년 11월 7일 한 사교계 파티에서 빈 궁정 오페라극장의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이었던 말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둘은 19년이라는 엄청난 나이차가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급물살을 타게 되어 급기야 이듬해 3월 9일 빈의 카를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 숨가쁜 여정이 말러 교향곡 5번에 녹아 들어가 있으니 작품 내에서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제1악장과 제2악장은 말러가 모차르트 <마술 피리>를 지휘하다 장출혈로 위독하게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해인 1901년 여름에 작곡되었다. 곡의 여러 곳에서 통곡과 분노의 감정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제3악장부터 전환점을 감지해낼 수가 있다. 호른이 멜랑콜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곡 전체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서 느낄법한 즐거운 기분으로 나아간다.

곡의 템포인 ‘아다지에토’가 제목이 되어버린 제4악장은 마치 관능적인 로맨스처럼 들린다.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는 이 곡을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무한 반복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과 탐미적인 죽음을 청각적 미장센으로 구현한 바 있다. 말러와 교분을 나누었던 네델란드 지휘자 멩엘베르흐는 이 곡을 알마에 대한 말러의 사랑고백으로 보고 있다. 편지 대신 말러가 ‘아다지에토’의 자필보를 알마에게 보냈고 그녀는 그의 뜻을 직감하여 곧 사랑의 응답을 보냈다는 것이다. 음악적 지성이 높은 인물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문답’인 셈이다.

말러가 교향곡 5번의 작곡을 끝낸 시점은 이미 알마와 결혼하여 아내가 한창 곡의 사보를 도와주고 있었을 때였다. 알마는 마지막의 코랄이 교회 스타일이고 지루하다는 견해를 표했지만 말러는 자신의 음악적 고집을 유지했다. 죽을 고비에서 벗어나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칭송 받는 이를 아내로 맞이한 40대 새신랑의 기쁜 심정을 알마가 이해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교향곡 5번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환희의 카오스이다. 예측불허의 시대에서 복권 당첨과 같은 짜릿함을 주는 엔딩이 말러를 듣는 묘미를 전한다고도 볼 수 있다.

 

글. 김문경(음악 칼럼니스트)

 

 

         

INFO.

 

2017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Last&Best’

성시연&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 구스타프 말러 

 

 

일      시 : 12.8(금) 8:00pm

장      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

입 장 료 :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대      상 : 초등학생 이상

문      의 :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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